‘수라’,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수라’,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 이정순
  • 승인 2023.08.13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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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연일 폭염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여름이다. 밖에 나갈 때마다 한증막을 연상케 하는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바로 얼마 전에는 집중호우로 온 나라가 난리를 겪었는데 이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지구온난화는 한반도의 여름 날씨를 열대기후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단순히 더운 날씨가 아니라 너무 뜨거워서 사람이 죽을 지경의 날씨가 된 것이다. 이 모두 환경 재앙의 좋은 본보기이다. 인간들이 자초한 자연 재앙의 결과인 것이다. 개발과 성장의 이름으로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한 결과를 지구 곳곳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영화 포스터 캡쳐(필자)

‘수라,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라는 오늘 칼럼의 제목은 최근에 감동 깊게 본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필름 ‘수라’에서 따온 제목이다. ‘수라’는 황윤 감독이 새만금간척사업으로 황폐화된 갯벌의 모습과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7년여에 걸쳐 찍은 기록 영화이다. 이 영화는 2022년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수라는 ‘비단에 놓인 수’를 뜻한다. 간척사업으로 바닷물이 말라버리기 전 아름다운 갯벌의 모습을 표현한 단어이다. 또 그런 모습으로 복원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본래 수라 갯벌은 갖가지 생명들로 충만한 아름다움을 내뿜던 곳이었지만 지난 30여 년간 이어져 온 간척사업으로 수 많은 생명이 사라져 지금은 척박한 땅으로 바뀌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이곳에 여전히 생명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갯벌’이라 부르며, 20년간 갯벌의 철새들을 촬영하고 있다. 지금은 오동필 단장의 아들 오승준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승준은 신공항건설이라는 또 다른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수라갯벌에 멸종위기종인 쇠검은머리쑥새가 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새의 노랫소리를 녹음하러 간다. 그런데 이들 옆에는 언제나 황윤 감독이 있다. 환경문제 전문가 황윤 감독은 개발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올린다. 생태계 파괴는 결국 지구 전체의 멸만뿐이라는 엄중한 결론을 관중들에게 전한다.

새만금 마지막 갯벌 수라(영화 포스터 캡쳐-필자)

1991년부터 시작된 새만금간척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개발 사업이었다. 부안∼군산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간척토지와 호소(湖沼, 호수와 늪)를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2006년 4월 방조제 물막이 사업을 완료하고 2010년 4월 27일 완공되었다. 사업 내내 환경 훼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환경단체의 항의를 받았다. 새만금 사업으로 바다 물길이 막히면서 갯벌이 썩기 시작했고, 고기가 잡히지 않아 어민의 생존이 위협당했다. 주민들은 점점 바다 일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나 공사판을 떠돌고 일부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보다 못해 환경단체와 전북지역 주민 등이 농림수산식품부를 상대로 낸 '새만금 사업' 계획 취소 청구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개발의 논리가 생태계 보존의 논리를 이긴 것이다.

2006년 물막이 공사가 완료됨으로 마침내 갯벌은 죽은 땅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 갔다. 수많은 생물들이 집단 폐사했다. 하지만 오동필 단장 같은 사람들은 끝까지 그 지역을 지키며 생태계의 모습을 관찰했다. 황윤 감독은 다시 군산에 돌아와 오동필과 함께 생명의 끈질김과 위대함을 갯벌에서 목격하게 된다. 간척사업이 끝나고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인데도 생명은 다 죽지 않았다. 2006년 마지막 물막이 공사 이후 황폐화된 갯벌은 여전히 귀한 새떼들이 모여드는 생명의 터전이었다. 멸종 위기종을 비롯한 각종 생명체들이 생존의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환경단체가 방조제의 완성으로 물이 썪어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질검사를 통해 문제제기를 한 결과 2020년 12월부터 군산 쪽 갑문인 신시갑문을 개방하여 하루에 두 번씩 해수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다시 바닷물이 갯벌에 조금씩 흘러 들어가자 생명이 기적처럼 살아나고 새들이 돌아왔다. 물론 이것으로 수질을 온전히 회복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시민들은 갯벌이 온전히 살아나도록 더 많은 문을 열어 해수를 유통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많은 새들이 집단으로 비상하는 모습이 영화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 너무 감동스러웠다. 이렇게 많은 새들이 새만금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황윤 감독은 도요새의 집단 군무를 목격한 자신의 죄를 말한다. 왜 죄인가 의아했지만 금방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의 죄’인 것이다.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감동한 사람의 책임감인 것이다. 수라 갯벌의 그 아름다움을 잘 지켜내지 못한 사람의 책임감을 두고 그는 죄라는 표현을 썼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한 표현이다. 우리 신앙인이 응당 느껴야 될 감정을 저들이 생태계와 교감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 수라 갯벌은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2022년 6월 30일 국토교통부 장관은 군산공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신공항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해수유통으로 잠시 갯벌이 회복되는 듯했지만, 이제 신공항 건설로 그나마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생태계 파괴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시민들은 국민소송인단 1,308인을 모집하여 2022년 9월 28일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현재도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비록 소수지만 생태계를 지키려는 저들의 노력이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갯벌 위로 날아가는 새들(영화 장면 캡쳐-필자)

다큐멘터리 필름 ‘수라’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을 놓치면 생태계는 회복불가능한 죽음의 땅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무한정한 개발은 잠시 인간의 편리함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결국 파괴된 생태계처럼 인간의 삶 역시 파괴될 것이라고 외친다.

신학자 구티에레스는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회심은 곧 이웃에 대한 회심을 의미한다고 역설했다. 즉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내면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회심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주위의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회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회심이야말로 복음적 회심이요 진정한 기독교적 회심이다. 이런 회심은 기독교적 영성의 시금석이다. 그런데 이제 생태계를 우리의 이웃으로 간주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우리 마음대로 지배하고 개발하고 파괴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생태계는 우리와 더불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할 이웃인 것이다.

이런 회심을 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철저한 변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들의 이웃인 생태계의 현재 모습을 직접 체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간접적이나마 이런 노력에 도움을 준다. 또 생태계를 소중한 이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영화에 나오듯이, 수라 갯벌의 아름다움을 체험한 자라면 응당 자기변혁을 체험한 자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의 죄’를 깨닫게 된 자일 것이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파괴되고 죽어가고 있는 자연 생태계가 바로 우리들 공동체의 일부인 이웃임을 깨닫게 된 자일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생태계를 향한 회심’이 일어날 것이다.

이제 ‘수라,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회심이 일어날 때이다. 새로운 자각으로 함께 힘을 모아 기도하고 외치고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행동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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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 내레이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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