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독교, 어디로 가는가?
미국 기독교, 어디로 가는가?
  • 이정순
  • 승인 2023.04.2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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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종교에서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종교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문구를 내건 내셔널 대성당(워싱턴 DC) / 출처: 위키미디어 코몬스

필자가 유학생으로, 이민자로 미국에 16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만난 한국 기독교인들을 보면 한결같이 미국을 “하나님의 축복의 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아마 미국을 상징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문구가 이들의 가슴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누구든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공을 이룰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쪽만 맞는 표현이다. 미국의 시작부터 그 땅에 수천년 동안 살아왔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라는 불편한 진실이 먼저 등장한다.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 수많은 이주민들로 이루어진 나라인 것은 맞지만, 여전히 ‘WASP’으로 대변되는 앵글로색슨계 개신교 백인이 주도하는 나라이다. 얼마 전 트럼프라는 기이한 대통령이 등장해 미국의 민낯을 다 드러내놓고 말았다. 그동안 쉬쉬하며 다들 언급조차 꺼려했던 인종차별주의와 백인중심주의로 이민자들, 특히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큰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현실을 얘기할 때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종교, 특히 기독교(개신교)이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것만 봐도 기독교의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다. 각종 선거 때마다 보수 기독교가 영향력을 끼친다. 그런데 지난 4월 9일 미국 CNN 방송에서 미국 기독교와 관련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미국에서 기독교의 쇠퇴에 대한 예측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라는 제목의 방송인데, 종교 학자들의 견해와 종교 전문기자의 분석을 덧붙인 특집 보도였다. 방송의 원문은 현재 CNN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 어째서 다른 나라 종교 얘기를 하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좋든 싫든 한국 기독교는 미국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고 여전히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한 번 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광화문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릴 때마다 성조기가 단골로 등장한 것을 보면 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미국 기독교는 어디로 가는가? 유럽의 교회들처럼 쇠퇴의 길로 가는가? 아니면 이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CNN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독교는 유럽처럼 쇠퇴하지 않을 것 같다. 또 많은 사람들이 200년 넘게 미국 기독교의 쇠퇴와 멸종을 예언했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새로 유입되고 있는 이민자들로 인해 오히려 활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CNN은 종교학자들에게 미국 기독교의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앞으로 미국 교회 교인수의 감소보다는 이민의 물결에 적응하는 교회의 능력이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즉 기존의 백인 중심의 전통적 형태의 기독교가 아니라 미국에 들어오고 있는 이민자들의 기독교로 인해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기독교는 계속 쇠퇴하여 서유럽 교회의 길을 따라갈 것이라는 교회 지도자들과 학자들의 일반적인 전망과는 전혀 다른 전망이다.

퓨리서티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발표한 202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들 중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약 64%에 이른다고 한다. 50년 전에는 그 수치가 90%였다. 같은 조사에서 미국의 기독교인 대다수가 2070년 무렵에는 기독교가 사라질 수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최근 3년간 미국 교회의 교인수는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된다. 또 2021년에 발표된 갤럽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기독교인 수는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가톨릭교회와 남침례교단 성직자들의 성추행 스캔들로 교회의 사회적 인지도가 낮아진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다.

2017년 1월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자들 / 출처: 위키미디어 코몬스

미국에서는 각종 선거를 비롯한 정치에 극우 보수주의(복음주의) 기독교가 늘 영향을 끼쳐왔다. 남부 ‘바이블 벨트’를 중심으로 한 백인 보수주의 기독교가 트럼프를 지지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극보수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종교적으로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자들”, 적절한 말이 없어 CNN에서 그냥 “NONE”(없음, 無者)이라고 표현되는 자들의 부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또는 "딱히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nothing in particular)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이 현재 미국 인구의 30%에 달한다. 이 수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바로 이들이 미국의 종교적, 정치적 지형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학자들은 진단한다. 어떤 학자는 앞으로 이들이 종교적 우파들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고, 보수 백인 기독교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이 정치세력화된 보수 백인 기독교를 압도하면서 미국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종교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 정치세력화되어 미국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는 극보수 백인 기독교를 능가한다는 것은 일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세속화를 의미하는 지는 정확하지 않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부 학자들은 증가하고 있는 이민 현상에서 미국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 트럼프 시대에 주춤했던 이민의 물결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미국의 갈색화”(Browning of America)라고 부른다. 2045년에 이르면 백인이 미국에서 소수 민족으로 위치가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설명하는 문구이다. 캘리포니아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현재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즉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들로 미국 기독교는 앞으로 활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부흥과 활력은 기존의 백인 주류 교회들이 이민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들의 신앙과 어떻게 융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는 성서적 가르침에 근거해서 이들을 환영할테지만, 백인 개신교인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식의 백인 중심 민족주의라는 가치와 상충된다는 점을 경험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성서의 가르침보다는 백인 민족주의에 바탕해서 이민자들을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앞으로의 닥칠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종교 학자들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독교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전통적인 주류 교단의 감소는 종교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종교에 희망이 없다는 증거이다. 물론 종교인의 숫자가 준다고 반드시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반대로 영성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언젠가 제도권 교회와 연결되리라는 주장도 있다. 또 앞에서 지적한 “무자”들의 증가 역시 오히려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이들이 유럽의 기독교인들보다 오히려 더 기독교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유입에 따라 미국 기독교의 지형은 어떤 형태로든 바뀔 것임에는 분명하다.

2018년 미네소타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에 항의하는 아이티계 이민자들 / 출처: 위키미디어 코몬스

마지막으로, CNN이 인터뷰한 노스 센트럴 대학교 페리 해말리스(Perry Hamalis) 교수는 한국에서 체류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 기독교를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해방의 도구로 파악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에서 기독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개척자들의 종교가 아니라 반식민주의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종교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60만명의 신자가 다니는 순복음 교회의 예배 모습을 활력에 가득 찬 한국 교회의 상징으로 CNN은 보도했다. 한국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일면 감사할 일이지만, 그의 평가는 현재의 한국 개신교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한국 교회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학자의 분석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유감이다. 그의 진단은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극우 기독교 세력의 준동으로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 이미 한국 개신교는 예언자적 소수를 제외하곤 일제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 시절 보여주었던 저항과 해방의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다. 많은 교회들이 축복과 성장에만 매달리는 자기들만의 폐쇄집단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교회의 크기와 교인수를 권력과 부로 착각한 나머지 교회의 공공성마저 무시한 채 곳곳에서 세습, 재정, 성적 타락 등의 문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을 해말리스 교수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먹사’가 되어 버린 부끄러운 현실을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960-1970년대 보수 한국 교회보다 더 보수적인 대다수 미주 한인교회의 현실 역시 암울하기만 하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종교집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종교든 시대를 진단하지 못하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면 사라질 뿐이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종교집단은 반사회적인 전염병만 유발할 뿐이다. 개신교의 아류인 신천지와 JMS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럼에도 오늘 이 시간에도 신앙의 본질과 의미를 고민하고 묵묵히 기도하며 겸손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이름 모를 신앙인들과 목회자들이 미국과 한국 기독교의 희망일 것이다. 그런 기독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낡은 기존질서의 해체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고난과 죽음 다음에 비로소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종교 학자들이 이민의 물결에 종교의 희망을 거는데 필자 역시 찬성한다. 모든 종교, 특히 기독교의 본질은 낯선 자를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동료 인간으로 적극 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가 이민자들로 인해 좀 더 다양해지고, 모든 인간들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로 변화되는데 기독교가 마중물이 되길 바랄뿐이다. 이제 미국 기독교든 한국 기독교든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낯선 자들을 적극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모든 자들을 환대하고 포용하는 공동체로 변화될 소망은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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