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축하해야 할 ‘모든 성도들의 날’
함께 축하해야 할 ‘모든 성도들의 날’
  • 이정순
  • 승인 2023.10.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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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은 ‘모든 성도들의 날’(All Saints’ Day)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생소한 날이다. 우리나라 달력에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지만 미국 달력에는 11월 1일이라는 숫자 밑에 ‘모든 성도들의 날’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한 번도 이런 교회명절을 지킨 적이 없어서 여전히 생소하지만, 이날은 기독교의 오랜 전통 중 하나이다. 지금도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에 속한 많은 교회들은 11월 1일 당일이나 그 다음 주일을 ‘모든 성도들의 날’을 기념한다.

이탈리아 화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1455)가 그린 “성인들과 순교자들”(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영어 ‘All Saints’ Day’는 한글로 ‘모든 성인들의 날’ 또는 ‘모든 성도들의 날’ 로 번역할 수 있다. 가톨릭이나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만성절’(萬聖節)로 번역한다. 하지만 개신교 전통을 따르는 필자는 ‘모든 성도들의 날’로 번역한다. 이런 번역은 특정 성인들만을 지칭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구원받은 거룩한 자, 즉 성도가 될 수 있으므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성도들의 날은 본래 초대 기독교에서 지켰던 ‘순교자의 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보통 4세기경부터 시작되었으며 9세기에는 매우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죽은 자들의 기일을 늘 기념하곤 했다. 특히 순교자들의 기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순교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이루었으며, 현재도 그리스도와 함께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이 ‘모든 성도들의 날’로 자리 잡게 되었고, 오늘날 서양의 많은 교회들이 이 날을 교회명절로 지킨다.

이것은 성서적으로도 근거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언급되고 있다. 즉 우리보다 앞서서 살다간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현재 우리들의 신앙을 증언하고 있으므로 계속해서 신앙의 길을 가라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히 12:1). 언뜻 보기에 왜 죽은 이들까지 거론하는가 하고 의아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죽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과거의 신앙 전통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신앙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생각하게 될 때 비로소 기독교 이전의 수많은 신앙의 조상들을 자신들의 과거요 뿌리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죽은 성도들을 생각하는 전통은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들이 예배 때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에 보면 ‘성도들의 교제’(communion of saints)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이 구절은 원래 초대 교회에서 살아 있는 기독교인들과 죽은 성도들과의 교제를 의미했다. 곧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교통함을 의미했다. 이 성도들의 교제는 초대 기독교 신앙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다시 말해, 성도들의 교제는 하나님의 사랑이 구현되는 장소들 중의 하나였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죽음이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성도들의 교제도 분열시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 .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5-38).

바로 이런 전통이 종교개혁 이후에는 바뀌게 되었다. 즉 다양한 교회 전통이 축소되었고, 성도들의 교제는 기존의 살아 있는 기독교 공동체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성서를 중심으로 한 종교를 강조하다 보니 성서에 근거가 불분명한 전통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전통들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1,500여 년간 내려오던 기독교의 전통이 개신교라는 새로운 전통을 통해 단절되고 축소되고 만 것이다. 물론 당시 부패한 가톨릭의 교권에 항거하여 새로 개혁된 기독교를 만들다 보니 이런 단절과 축소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찬양, 통성기도, 말씀 중심의 단순한 예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유형의 예배가 성도들의 뜨거운 신앙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영성이 보다 깊어지고 넓어지기 위해서는 그동안 사라졌던 여러 전통들을 다시 재해석해서 비판적으로 수용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필자는 특히 ‘성도들의 교제’라는 사라진 전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전통이 서구에서는 ‘모든 성도들의 날’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한국 교회의 절기력에 이 날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교제라는 전통은 믿음의 근원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을 존경(veneration)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고,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모든 성도들의 날'을 맞아 죽은 성도들의 무덤에 화환과 촛불을 갖다 놓은 모습(폴란드 그니에즈노, 출처: 위키미디어커컨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생전에 ‘모든 성도들의 날’을 존중하고 축하했다. 1767년 11월 1일자 일기에서 웨슬리는 모든 성도들의 날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축제”(a festival I truly love)라고 표현했으며, 1788년 11월 1일자 일기에서도 모든 성도들의 날을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날”(a day that I peculiarly love)이라고 기록했다. 물론 가톨릭의 예전을 상당 부분 수용했던 성공회의 사제였던 웨슬리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감리교인들 역시 당연히 이 날을 중요한 절기력으로 지킬 때 참다운 감리교의 신앙과 영성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미연합감리교회에서는 이날을 교회의 중요한 전통으로 간주하고 축하하고 있다. 미연합감리교회 공식 웹사이트(umc.org)는 이날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모든 성도들의 날은 신앙 안에서 살다 간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회를 의미한다. 모든 성도들의 날은 우리의 역사, 즉 연합 감리교인들이 교회의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을 축하하는 때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성경, 전통, 체험, 이성, 토착문화 라는 다섯 가지 기둥 위에 세워졌다. 그중 두 번째가 전통이다. 즉 2,000여 년간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아직은 낯설지만 ‘모든 성도의 날’과 같은 전통을 다시 발굴하고 기념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감리교의 신앙과 영성을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성도들의 날’은 이미 앞서간 성도들 모두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가능케 해주는 중요한 절기이다. 바로 이 날을 통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과 사랑을 함께 나누게 되는 공동체, 즉 과거, 현재, 미래에 속한 성도들의 불가시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며,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에큐메니컬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 날을 통해 현재의 성도들은 과거의 뿌리와 연결되고, 이런 관점에서 종말론적으로 완성되는 미래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해마다 전 세계 교회들에서 신앙인들은 ‘모든 성도들의 날’을 기념하여 드리는 기도를 통해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한국교회, 특히 감리교회에서도 이렇게 될 날이 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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