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치유'
'기억과 치유'
  • KMC뉴스
  • 승인 2023.09.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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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22주기를 지나며
911테러 추모 박물관(출처: 위키미디어코몬스)

얼마 전 TV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뉴욕시를 소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안내하는 앵커가 검정색 정장을 입고 있어서 오늘은 무슨 날인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문득 달력을 보니 9월 11일이었다. 프로그램 앵커는 22년 전 테러리스트의 자살 공격을 받고 무너졌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주위를 보여 주었다.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뉴욕 그라운드제로 앞에는 9·11 테러 추모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제 그곳은 폐허가 된 세계무역센터와 구분하기 위해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라는 이름으로 새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 건물은 지상 104층 지하 5층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현대식 건물이다. 언제 테러가 있었냐는 듯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앵커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102층 전망대에 올랐다. 순간 22년 전 테러로 폐허가 된 세계무역센터와 버지니아주 국방부 본부인 펜타곤 주위 모습이 사면에 파노라마처럼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끔찍했던 테러의 모습이 기억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파노라마 영상은 끝나고 유리 밖으로 뉴욕시 모습이 비치면서 시청자들은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9·11테러는 미국에 저항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알카에다가 2001년 9월 11일에 4대의 미국 민간 여객기를 납치해 일으킨 테러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테러범들은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들의 자살공격은 미국의 심장인 뉴욕시의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을 시작으로 남쪽 건물, 버지니아주 미 국방부 본부 건물과 펜실베이니아 섕크스빌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뉴욕에서만 2천753명이 숨졌고, 국방부 건물 충돌로 184명이 희생되는 등 총 2천977명의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또 25,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인명구조에 뛰어든 소방관 340명과 경찰관 72명이 사망하였다.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소방관과 경찰관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미국은 인프라의 파괴로 최소 100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과거의 사건은 기억으로 남는다. 이렇게 엄청난 비극적 사건은 특히 더 그러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아픈 기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일어났다고 미국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계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치유와 화해,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갑자기 멍해지고 가슴이 아파오곤 한다.

2001년 당시 필자는 4년째 보스턴에 살고 있었다. 9월 11일 화요일 아침 필자는 마침 아침 일정이 없어서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ABC 채널에서 아침마다 여러 앵커가 곳곳을 방문하며 진행하는 ‘굿모닝 아메리카’라는 방송이었다. 뉴욕에서 소식을 전하던 앵커 한 명이 경비행기 한 대가 세계무역센터 주위를 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조종 실수로 비행 루트를 잘못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앵커가 그 비행기가 건물에 돌진했다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또 두 번째 비행기가 건물로 돌진했다고 . . . 그래서 건물이 무너질지 모른다고 하면서 . . . 말이다.

필자는 9·11테러 사건을 그렇게 접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다가, 놀라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영화에 나올법한 일이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또 TV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보게 되다니 . . . 나도 같이 충격을 받고 소리 지르고 슬픔에 빠졌다. 그날 받은 충격은 지금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다. 이후 테러범들이 납치한 4대의 비행기 중 2대가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에서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수시로 드나들었던 바로 그 공항에서 테러범들이 비행기를 납치했던 것이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전원 희생되고 만 것이다. 그 후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희생자들이 주차타워에 주차했던 차들이 찾는 이가 없어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다가, 마침내 폐기 처분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다시 한번 테러가 남긴 흔적으로 마음이 우울했다. 이는 나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 특히 테러를 당한 뉴욕과 버지니아 시민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특히 테러범들이 잠시 머물면서 테러를 계획하고 비행기를 납치했던 보스턴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테러라는 극악무도한 비극적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날 이후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이는 희생자 유가족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테러로 인해 심리적, 신체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2011년에 뉴욕시는 테러 희생자와 가족, 지역주민들을 위해 ‘세계무역센터 건강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정신 건강뿐 아니라 건물 파괴 후 먼지에 의한 호흡기 질환 등 신체 질병 등까지 기한을 두지 않고 무료로 지원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9·11 테러 발생 후 20여 년간 이 프로그램에는 응급요원과 생존자 등 11만여 명이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테러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해는 너무 엄청나서 쉽게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유는 현재진행형이다.

9·11테러 이후 세계는 또다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테러의 주범인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카에다 세력을 응징한다는 구실로 이라크를 침략하여 미국이 지명한 독재자를 축출했지만, 이라크는 지금도 혼동 가운데 있다. 또 얼마 있지 않아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구실로 침공하여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사실상 거짓 정보에 입각한 잘못된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이 전쟁은 ‘더러운 전쟁’이라는 딱지가 붙고 말았다. 힘의 응징이라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9·11테러로 인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알카에다로 인해 괜히 대다수 온건파 이슬람교도들만 고통을 겪게 되었다. 나아가, 미국에 사는 모든 유색인종들도 잠정 테러세력으로 간주되어 온갖 인종차별에 시달리게 되었다. 괜히 애꿎은 사람들만 희생당하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테러 사건은 복잡한 미국 외교, 특히 대중동외교와 자기 세력확장을 꾀한 이슬람 극단세력 간의 충돌로 인한 것이지, 대다수 온건한 이슬람교도들이나 기타 유색인종들과는 무관하다.

또 자신을 이슬람교도들이라고 주장했던 이 테러범들은 사실 이슬람과는 무관한 자들이라고 이슬람 학자들은 비판한다. 테러범들은 테러를 일으키기 전 보스턴과 워싱턴DC에서 잠시 머물면서 클럽에 가서 즐기고 술을 마셨는데, 이런 행위는 경건한 이슬람교도들에게 있을 수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모자라, 기분을 내기 위해 클럽에 가고 술을 마시다니? 즉 이슬람의 정체성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무고한 인명을 살해하는 테러를 정당화는 종교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테러범들이 아무리 ‘알라’(아람어로 신이라는 뜻)를 외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아니라 자신들의 환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무릇 모든 종교의 본질은 자비와 사랑이다. 대다수 이슬람교도들은 그저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하고 이웃과 별 탈 없이 지내려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다. 극단주의자들은 모든 종교에 존재하는데, 이들은 종교의 이름을 가장한 가짜 종교인인 것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이 잘못되었으면 얼마든지 다른 평화로운 방법을 사용해서 비판하고 항의할 일이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자살테러까지 감행해야 할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힘을 사용한 테러와 보복, 또다시 보복과 보복 . . . 이른바 폭력의 악순환은 중단되지 않는다. 계속적인 살상과 파괴만이 쌓여나갈 뿐이다.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인간의 욕망 이 신의 자리를 차지한 가짜 종교만이 기세를 떨칠 뿐이다. 이제 이를 끊어내기 위해, 즉 진정한 치유를 위해 ‘한(恨)과 단(斷)의 변증법’이 필요할 때다. 민중신학자 고 서남동 교수가 사용한 이 표현은 ‘한’으로 가득 차서 계속 무력으로 복수하려는 개인과 사회 및 국가에 경종을 울린다. 바로 이 악순환을 끝내는 ‘단’(斷)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단’은 한의 극복이며 개인적으로는 자기부정이고 집단적으로는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이런 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먼저 자비와 연민의 마음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불의를 불의로 인식하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자비와 연민을 잃지 않으면, 결국 폭력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를 통한 용서와 화해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비로소 인간다운 사회,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과 치유,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복음 5:7).a

국기와 꽃을 꽂고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습(출처:위키미디어코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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