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빛이신 예수, 그분을 따라
참 빛이신 예수, 그분을 따라
  • 이정순
  • 승인 2024.01.08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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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역사 속으로 저물고 2024년이라는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역사이지만 새해가 시작될 때만큼은 또 한 번의 카이로스가 시작된 것처럼 숙연한 감정을 갖곤 한다. 새해 벽두부터 어두운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전쟁의 비극이 여러 곳에서 지속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슬픔 가운데 살고 있다. 지난 해 예수님의 탄생성지인 베들레헴에는 성탄 트리가 화려한 장식으로 빛나지 않았다. 성탄 축하 행사는 사라졌고 전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시 전체가 애도하는 비통한 모습이었다. 특히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모아 그 가운데 아기 예수를 모신 모습이 가자지구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기쁨과 희망보다는 절망과 어두움이 지구촌에 드리우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21세기 인류 사회가 아직도 온갖 갈등과 분쟁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에 좌절과 실망을 다시 느끼게 된다. 언제쯤 인류 모두가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짙은 어둠이 우리를 감싸는 현실에서도 우리는 다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를 맞았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모습(출처 : 위키미디어커먼스)

새해 첫 주가 되면 교회 절기력으로는 ‘주현절’을 지키게 된다. 전 세계 그리스도교 교회는 주현절로 새해를 시작하는 셈이다. 주현절(‘공현대축일’ 또는 ‘신현축일’로도 부름)은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께 찾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고 경배를 드렸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즉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이 땅에 나타나심을 기리고 축하하는 절기인 것이다. 여기서 ‘주현’(主顯, ephipany)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에피파니아’(epiphania), 즉 나타남, 출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성탄절만큼이나 오래된 주현절이 새해를 시작하는 절기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일회적인 성탄의 기쁨에서 그치지 말고 일년 내내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억하며 그 뜻을 되새기라는 의미이다. 즉 이 땅에 나타나신 거룩한 하나님의 화육적 사건이 주는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동방박사를 이끌었던 빛을 따라 진리의 여정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한 가정의 자살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유명인이 아닌 만큼 이 가정의 자살 소식은 지역 언론에 간단히 소개된 정도였다. 생활고로 인해 10대 자녀 2명과 함께 부부가 함께 자살한 사건이었다. 너무도 가슴 아픈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얼마나 힘들면 온 가족이 삶을 끊을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일까? 한 가족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미처 돌보지 못한 이웃들과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부의 격차로 사회적 약자가 속출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더 이상 쉬쉬할 사건이 아니게 되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얻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의 빈익빈 문제, 부의 독점과 가난의 문제, 사회적 약자의 문제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극이 일어난 이 가정이 목사의 가정이라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다. 이제 성직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목회자도 생활고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 역시 우리 사회의 취약 계층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중대형 교회 목회자와는 거리가 먼 얘기일 수 있다. 무엇이 가난한 교회 목회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무엇보다, 좀 더 형편이 나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큰 교회가 생활고로 허덕이는 미자립 영세 교회와 조금이라도 더 나눌 자세가 되어 있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교회도 각자도생에 접어든 지 오래지만, 이웃사랑이라는 교회의 근본 가르침을 먼저 작은 교회 이웃에게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삶을 살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먼저 내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실현되는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6세기경 이탈리아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벽에 모자이크화로 그려진 동방박사 3사람(출처 : 위키미디어커먼스)

새해 첫 주를 여는 주현절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신앙의 여정을 가라고 재촉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움에 휩쓸리지 말고 빛을 향한 진리의 여정을 계속하라고 재촉한다.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는데 그치지 않고 친히 멀고 긴 진리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던 동방의 현자들을 본받으라고 재촉한다. 그들의 여정을 하늘의 별이 이끌었다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이 친히 이들의 여정을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별은 어둠에서 더 선명하게 빛나는 법이다. 칠흑같이 어둠이 깊어져도 저 하늘에 별이 반짝이며 우리의 영적 여정을 인도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정의 목표인 아기 예수를 만나 동방의 현자들은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그들은 바로 그분이 진리요 참 빛 자체임을 단순에 알게 되었다. 그동안 그들의 여정을 이끌었던 빛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이야말로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새해를 시작하면서 온갖 어두움이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별은 더 빛을 발한다. 아니 어둠은 결코 빛을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다. 성서는 예수님이 참 빛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요1:9)고 말한다. 이 땅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 모두를 비추는 참 빛이시다. 우리의 영적 눈과 귀가 열려서 빛으로 오신 예수를 알아보고 그분의 빛을 따라가는 올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니 그 빛을 먼저 내 마음에서 발견하고 새 희망을 갖기 바란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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