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시대, 종교의 역할과 미래는?
챗GPT 시대, 종교의 역할과 미래는?
  • 이정순
  • 승인 2023.04.09 2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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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시작된 지 채 석 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 놀랄만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2세대 인공지능인 챗GPT의 출현이다. 2016년 바둑의 고수인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결을 벌인 적이 있는데, 이제 8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단순 프로그램이 아닌 대화형 인공지능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언어 중심으로 자체 학습을 진행한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인간의 질문에 답하면서 대화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초대규모의 인공지능이 인류 앞에 정면으로 등장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한다. 약 3천억개의 단어와 5조개의 문서를 스스로 학습한 챗GPT는 챗(chat)이라는 말이 드러내듯이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좀 더 정확한 답을 제시한다. 챗GPT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매달 돈을 내는 유료 사용자도 1백만명이 된다고 한다. 쳇GPT가 출현한 지 전세계 2달만에 사용자가 1억명이 넘어선 실정이다. 이제 누구든 쉽게 챗GPT를 실험해 볼 수 있다. 아니 생활 곳곳에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다.

먼저 필자의 경우 성경 본문(요한복음11:28-45)을 주고 설교문을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채 1분도 안돼 다음과 같은 설교문을 만들어 냈다.

제목: “믿음의 기적"

우리는 이번 주일 예배에서 요한복음 11장 28절에서 45절까지의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마르다와 그의 동생 나사로를 위해 믿음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들의 형제 나사로의 죽음을 예수님께 알리고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도착하기 전에 나사로는 이미 사망하였고,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를 극도의 슬픔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이르자,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비록 죽어도 살 것이요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 나오라!"고 외치시자, 나사로는 죽음에서 일어나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의 기적입니다. 나사로는 죽은 자였지만,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과 믿음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의 깊이를 더욱 더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함께 예수님을 따르며, 나사로와 같이 죽음에서 일어나 살아나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아직 간단한 요청이라 설교문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많지만, 다시 소주제로 나누어서 자세한 요청어를 입력하면 챗GPT는 보다 길고 학문적 주석과 적절한 예화가 곁들여진 설교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야말로 챗GPT와 대화하면 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이제 챗GPT의 등장으로 인류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앞으로 우리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챗GPT를 외면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컴퓨터의 발명과 같다고 이야기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챗GPT는 1980년대 이후 가장 혁신적인 기술 발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의 발전은 마이크로프로세서,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의 탄생만큼이나 근본적인 것"이며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챗GPT는 세계 주요 언어에 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영어에 주로 익숙해 있어서 한국어 서비스가 다소 늦다. 또 확률적인 결론만 제시하므로 100% 정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 ‘환각’(hallucination)과 같은 오류를 드러내기도 한다. 잘못된 지식을 제공하면서도 그것이 참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경우도 많아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질문자가 답을 교정하면 즉시 미안해 하기도 한다. 챗GPT는 시간이 갈수록 이런 점들을 보완하고 있고 계속 진화 발전하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챗GPT4는 매우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챗GPT의 등장으로 인류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위에서 소개한 장밋빛 환상을 비판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교수는 최근 "챗GPT라는 그릇된 약속"이란 제목의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오늘날 인공지능의 혁명적인 발전은 우려와 낙관 모두의 원인이 된다"면서, "머신 러닝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언어와 지식의 개념을 우리의 기술에 통합함으로써 과학을 저하시키고 윤리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역시 다른 두 명의 과학자들과 <뉴욕타임스>에 쓴 공동기고문에서 “AI의 언어 습득은 AI가 문명의 운영 체제를 해킹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됐음을 뜻한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공상과학 소설에만 국한되었던 AI의 위험이 GPT-4과 같은 언어모델 개발을 계기로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언어가 인류 문화의 운영체제임을 감안하면 AI가 언어를 습득한 것은 인류 문명의 마스터키를 손에 넣은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인류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만든 환상의 장막이 인류 전체에 드리워지고 우리는 그 장막을 걷어낼 수 없으며 심지어 장막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하게 되거나,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했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스카이넷(Skynet)’이 등장하여 인류를 멸망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소설이나 만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최악의 경우이다. 즉 통제되지 않는 인공지능이 신과 같은 힘을 무책임하게 휘두르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하루 속히 챗GPT 인공지능을 일부 기업들의 시장 경쟁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이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공론화해서 인공지능 개발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결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윤리적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GPT-4와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인간이 통제 능력을 갖출 때까지 사용을 늦추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챗GPT 인공지능은 세계 곳곳으로 이미 확산되고 있다.

챗GPT 인공지능 시대에 종교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 주요 종교들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챗GPT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종교가 출현할 것인가? 챗GPT 시대,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현재 챗GPT와 관련하여 한국 기독교계는 너무도 조용한 듯하다. 현실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가? 그저 기존의 교회 형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는 것인가?

앞에서 예로 들었듯이, 이미 챗GPT로 설교문과 기도문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예배와 설교 동영상까지 단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다. 설교 표절과 같은 문제가 의미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제공되는 각종 종교 관련 동영상은 경쟁이 무의미해졌다. 그 누구도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말이 좋아 새로 도래한 자유경쟁시대이지, 사실상 진리가 혼미한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무엇인 진리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악의 경우 GPT가 얼마든지 조작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목사나 신부와 같은 전문 종교인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챗GPT는 이미 상담심리사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실정이다. 각자의 고민을 말하면 거기에 맞는 좋은 말을 데이터에서 뽑아서 적절하게 해준다. 때문에 목회상담과 같은 영역은 더이상 목사나 신부만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챗GPT가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다. 물론 성직자나 종교 전문가의 역할을 챗GPT가 완전히 대체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그렇다고 안심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역사적으로 종교, 특히 기독교는 과학의 변화에 둔감해 왔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변화에 의해 강제로 변화되기 전에 종교인들 스스로 시대의 변화에 주목하고 비판적으로 검증하여 능동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는 오래된 주제가 이제 종교계와 신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때이다. 기술 과학의 윤리적 토대는 종교계에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쳇GPT 시대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에 축적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챗GPT와 공존하면서 미래를 향한 지식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비판적 이성이 필요한 때이다.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과 기계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 주체적이고 개성적이며 창의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인공지능과 기계의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가치와 효율성에 맞서서 인간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와 목적을 확립해야 한다. 종교가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존속할 것이다. 인간존재의 깊이와 자유를 탐구하면서 세상 만물의 존재론적 깊이와 신비를 동시에 추구하는 자세, 또 과학적, 이성적인 사고를 적극 활용하려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챗GPT 시대 인공지능과 공존할 새 종교는 이런 방향으로 인류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기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OpenAI에서 개발한 이미지 생성 DALL-E 프로그램에 입력어를 직접 넣어 만들어 낸 이미지임>

인공지능과 협력하는 미래의 인류
인공지능시대의 종교
인공지능 시대 한국 교회의 미래-1
인공지능 시대 한국 교회의 미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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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 2023-04-09 22:01:00
챗GPT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