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포비아’를 극복하는 법
‘이슬람 포비아’를 극복하는 법
  • 이정순
  • 승인 2023.07.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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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바위의 돔 사원과 십자가( 모텔레 락스맨, 2011) / 출처: 위키미디어 코몬스

저출산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245,912명이다. 외국인 200만명 시대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제 곳곳에서 외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필자가 일하는 대학 역시 외국인 학생 수가 해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변화하는 현실에 적용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다문화, 다민족 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언론에 ‘대구 이슬람 사원’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 건립을 앞두고 일어난 갈등을 의미하는 문구이다. 그 전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경북대에 다니는 무슬림 유학생들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모색하던 중 스스로 돈을 모아 2020년 12월 대구 대현동에 사원 건축 공사를 시작했다. 이 지역에는 약 150여 명의 이슬람권 출신 유학생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타지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에서 왔다. 하지만 이 소식을 알게 된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고, 이로 인해 대구 북구청은 공사 중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다시 건축주와 시민단체 등은 행정명령 철회 소송을 냈고, 1·2심에 이어 작년 9월 대법원에서도 최종 승소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슬람 사원 건축공사가 재개됐지만 현재까지 사원은 완공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 건축을 강하게 반대하는 일부 극보수 기독교 단체들과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다.

반대하는 주민들과 기독교 단체들은 공사현장과 무슬림 유학생들의 거주지에 “테러의 온상 이슬람사원 절대 반대” 등의 현수막을 걸고,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 머리를 공사장 앞에 전시하고 돼지고기 음식을 나눠 먹는 삼겹살 파티를 열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살아 있는 새끼 돼지까지 갔다 놓기까지 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은 돼지를 가장 불결한 짐승으로 여긴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먹고 전시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이슬람을 극단적으로 모욕하는 행위이다. 이런 혐오 행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 “전형적인 혐오표현”이라고 규정하고 재발방지를 대구시에 부탁했다.

불가리아 슈멘의 오순절교회와 이슬람 모스크(무스타파 메메도프, 2015) / 출처: 위키미디어 코몬스

우리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이슬람권에서 수많은 노동자, 결혼 이민자, 유학생 들이 우리 사회에 들어와서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지만, 여전히 자기 언어, 종교, 문화와 함께 살아간다. 이들을 배척하고 추방해 버리면 저출산 시대에 접어든 한국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농촌, 어촌까지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고, 시골의 편의점마저 외국인 학생들이 운영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며 혐오하는 행동은 반인륜적인 행동으로 매우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특히 일부 기독교에서 이슬람을 대놓고 배척하고 혐오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스스로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신앙에 역행하는 모순적인 행동인 것이다.

오죽하면 한 보수 정치인이 나서서 “이슬람 포비아(공포)를 터무니없이 만드는 특정 사이비 기독교 세력들은 대구에서 추방돼야 한다”고 언급했다다. 다행히 서울에서 내려온 특정 기독교 세력들이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 운동을 부추기는 것이지, 대구 기독교 총연합회는 이슬람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는 또 “원수도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관용과 포용 정신”을 강조하면서, “이미 우리나라 주택가에는 성당도 있고 교회도 있고 사찰도 있는데 굳이 이슬람만 안된다는 것은 종교의 자유의 침해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정신에도 반하는 사이비 기독교인들이나 할 짓”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에서 비판할 일을 그가 대신 한 것이다.

대구 기독교총연합회뿐 아니라 이른바 정통을 자부하는 개신교 교단들이 공동으로 성명을 내야 할 시점에 한 보수 정치인이 이를 대신했다는 점에 매우 아쉬움을 느낀다. 또 그 많은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점도 매우 유감이다. 왜 다들 침묵하는가? 이슬람은 다 테러리스트고 배척해야 할 대상들인가? 그렇다면 지구화 시대에 이슬람권과 교역을 금지하고 오로지 기독교만을 유일 종교로 삼는 신정정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만큼 이슬람 문제는 이 시대의 금기어에 가깝다. 이슬람을 이웃종교로 존중하자고 언급하면 금방 이단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을까 염려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만큼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대구 이슬람 사원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라고 학생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공부 잘한다고 알려진 한 학생이 대뜸 무슬림이 영국 사회 곳곳에서 일으킨 범죄를 언급하면서, 이슬람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냐고, 언제 일어난 사건이고, 또 어디에 보도되었는지 재차 물어보니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마 선교 관련 유툽에 나온 내용을 재인용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이 학생의 주장은 전형적인 ‘이슬람 포비아’에 해당한다. 즉 근거가 정확하지도 않고, 무슬림을 직접 만나 대화해 본 적도 없고, 이슬람을 공부한 적도 없이, 단지 특정인의 주장에 따라 주장하는 경우이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내 ‘한국인 무슬림’ 인구는 약 6만 명이고, 전국에 16개의 이슬람 사원이 있으며, 작은 규모의 성원인 '무쌀라'는 약 80여 개라고 한다. 외국인까지 합치면 무슬림은 총 26만 명 정도로 대한민국 인구의 0.4%를 차지하고 있다.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당분간 이들의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현실에서 더 이상 이들을 혐오하거나 배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어떤 종교도 테러리즘과 연관이 있다면, 즉시 법적으로 고발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이슬람을 테러리즘과 연관시키는 데는 지난 10여 년간 알카에다나 IS(이슬람국가)와 같은 극단적인 그룹들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그저 자신의 안위와 세상의 평화를 걱정하는 소시민이자 온건파들이다. 필자는 해외에 살면서 직접 모스크를 방문해 보고, 또 무슬림들의 집에 초대되어 같이 식사를 해본 경험이 있다. 결론은 교리와 전통이 다르지만,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까지 일반화하여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종교에도 종교의 본질인 사랑과 자비에서 벗어나 폭력을 행사하는 극단적인 집단들이 있다. 그들은 종교를 이용한 폭력 집단일 뿐이다. 기독교에도 그 유명한 ‘KKK’단이 있지 않은가? 이들은 최악의 인종차별주의자로, 백인만이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를 주장하면서 함부로 흑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의 배경은 기독교이다. 이런 자들은 어떤 종교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종교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슬람(이란)과 그리스도교(조지아 정교회)의 대화(모스타파 메라지, 2011) / 출처: 위키미디어 코몬스

몇 년 전 목원대 신학대학과 교류중인 중국 중앙민족대학 종교/철학과 이슬람 전공 교수 한 분이 목원대를 방문해서 ‘중국 이슬람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다. 그는 이슬람의 기초 교리와 특성에 대해 소개한 후 그 당시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IS(이슬람국가) 문제를 언급하면서, 폭력을 정당화하며 전쟁을 일으킨 IS는 사실상 이슬람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런 극단적인 집단은 대다수 이슬람을 욕먹이는 사이비 이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문화 시대에 ‘이슬람 포비아’를 극복하는 길은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과 자비와 친절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우리 곁에 다가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길뿐이다. 그럴 때 진정한 기독교의 선교가 가능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 곁에 등장한 이웃들의 종교인 이슬람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누구든 한국 이슬람 성원 웹사이트에 들어가 역사와 교리를 살펴볼 수 있고, 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꾸란』도 직접 사서 읽어볼 수 있다. 서구의 시각에 의해서 소개된 이슬람이 아니라 직접 이슬람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슬람 포비아는 대부분 편향된 서구의 관점에서 제시된 설명이나 사건 보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슬람을 이슬람 자체의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슬람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 즉 ‘이슬람 리터러시’(Islamic literacy)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무슬림들과의 만남과 대화도 포함된다. 인간 대 인간으로 직접 만나서 대화해 보면 관점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럴 때 좀 더 다른 인간을 이해하고 용납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독교인의 신앙은 심화되고 풍요로워지며, 질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 7:12)라고 말씀하셨다. 사람 사는데 필요한 가장 근본되는 윤리를 제시하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다. 그래서 황금같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빛나는 ‘황금률’인 것이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먼저 남에게 그대로 행하라는 이 구절이야말로 ‘이슬람 포피아’를 극복할 수 있는 정답이다. 누가 남이 나를 적대하거나 혐오하면 좋겠는가?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내가 외국에 산다면, 그것도 전체 인구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에 나홀로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를 가장 혐오하는 행동을 하며 나를 적대시하고 배척한다면 좋겠는가? 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은 금방 이해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인구는 이미 700만을 넘어서 버렸다. 다문화 국가로 접어든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남을 먼저 대접하고 환대하는 자세야말로 새 시대 기독교가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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