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 ‘사회신경’과 ‘사회선교사’
감리교회 ‘사회신경’과 ‘사회선교사’
  • 이정순
  • 승인 2023.09.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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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루이스 하인의 전국아동노동위원회 컬렉션, 미국 국회도서관

감리교에는 타 교단과 다른 매우 독특한 점이 있다. 감리교인들이 무엇을 믿고 고백하는지 선포한 신앙고백 외에 ‘사회신경’이라는 신앙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1930년에 한국 감리교가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독립해서 자치선언을 했던 제1회 총회에서 교리적 선언 외에 ‘사회신경’을 고백했다. ‘사회신경’은 사회문제에 대해 감리교인이 신앙적으로 어떻게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당시 사회신경은 “인류는 겨레와 나라의 차별이 없이 천지의 주재시며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의 같은 자녀임을 믿으며 인류는 형제주의 아래에서 이 사회를 기독주의의 이상사회로 만듦이 우리 교회의 급무로 믿어 우리는 아래와 같은 사회신경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한다.

1930년 일제 강점기에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동등한 자녀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1930년도판 사회신경은 총 13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종의 동등권리, 인종과 국적의 차별 철폐, 여성의 지위 향상, 아동의 교육권과 노동 폐지, 노동의 신성함과 적절한 노동 시간 유지, 일주일 중 하루는 노동을 중지하고 안식이 필요함, 노동쟁의 시 공평한 중재제도의 필요, 빈곤의 감소 등 매우 혁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당시 감리교인들은 새 시대를 향한 역사적 비전을 가지고 실천한 선구자였음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시대가 흘러 1997년에 이르러 사회신경은 개정판을 내놓는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와 장정 제4절 사회신경 항목에 따르면, “감리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구현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30년 제1회 총회에서 사회신경을 채택하고 이를 신앙의 실천적 목표로 삼아,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는 데 이바지하여 왔다. 우리는 오늘의 시대가 안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을 앞에 놓고 우리의 사회적 삶의 새로운 실천 원칙을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1997년도판 사회신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 감리교인은 우리에게 선한 의지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우리의 가정, 사회, 국가, 세계 그리고 생태적 환경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바이다”로 시작하면서, 총 11개 항목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생태계의 보존, 가정과 성 및 인구정책, 개인의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노동과 분배정의, 복지사회 건설, 인간화와 도덕성 회복, 생명공학과 의료윤리, 정의사회실현, 평화적 통일, 전쟁억제와 세계 평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벌써 26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그대로 언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신경은 “우리는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선언함으로써 감리교인들,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개인구원에만 몰두하지 말고 사회 문제에 적극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한다. 또 그것이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사회신경이야말로 감리교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토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감리교인들은 자기 신앙의 선조들이 고백한 사회신경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몇 년 전 감리교 교회학교 교사 수첩을 받아보면서 간단한 감리교 역사와 신앙고백은 적혀 있는데 사회신경은 빠져 있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사회신경이라는 자랑스런 감리교의 전통을 외면하고 감리교 역사와 신앙고백만 나열하는 것은 반 쪽 짜리 감리교에 불과하다. 웨슬리 회심 주간에 웨슬리의 뜨거운 회심과 복음전도의 열정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사회신경이 빠지면 그것은 반쪽짜리 웨슬리에 불과하다.

출처 : 브리스톨 뉴룸교회 웹사이트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초창기부터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곳곳에서 설교한 내용 중에서 12가지를 뽑아 만든 <오늘을 위한 존 웨슬리의 정치적 선언>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 선언은 세계에서 영국 브리스톨에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에도 걸려 있으며, 미연합감리교회뿐 아니라 세계 모든 감리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1.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격을 줄이라. 2. 각 사람이 일을 하도록 도우라. 3.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 또한 그들이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우라. 4.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라. 5. 개인들이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느끼도록 권한을 부여하라. 6. 관용을 장려하라. 7. 여성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장려하라. 8. 이익이나 소비가 아닌 가치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라. 9. 모든 형태의 노예화를 종식하라. 10. 논쟁이나 분쟁을 피하라. 11. 편협한 개인 이익을 피하고 세계적 관점을 장려하라. 12. 환경을 보살피라.” 등이다(사진 원본 참조). 18세기에 언급된 내용인데도 21세기 세계의 현실에 여전히 타당한 것을 보면 웨슬리의 예언자적 면모에 매우 놀랍다.

특히 웨슬리는 노예제 폐지 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18세기 영국은 브리스톨 항을 중심으로 노예무역이 성행했던 나라이다. 웨슬리는 노예제 문제를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당시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벌였던 복음주의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 결과 마침내 노예제가 영국에서 폐지되었던 것이다. 웨슬리는 단순히 열정적인 복음전도자로만 명성을 날린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감리교 사회신경은 바로 웨슬리의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계승하고 실천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웨슬리의 이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미국 감리교회에서 1908년에 사회신경이 제정되었다. 이것이 다시 한국 감리교회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미국 감리교 사회신경은 당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일어나던 시기에, 공장, 광산, 제분소, 도시 빈민가의 공동주택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수백만 명 노동자의 노동 착취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사회신경은 교회가 사회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 위해 작성한 최초의 문서인 것이다. 1968년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와 감리교회가 합병할 때에는, 연합감리교회의 첫 장정에 사회신경을 포함시켰다. 1972년에는 “사회원칙”(Social Principles)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여 내용을 좀 더 확장했고, 사회신경은 마지막 부분에 수록되었다.

필자는 매 학기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신학생들에게 감리교의 특성을 묻곤 한다. 감리교단 신학생으로서 감리교가 무엇인가, 감리교인이란 무엇인가 하곤 묻는다. 구체적으로, 감리회 5대 신학지침, 감리회 교리적 선언, 감리회 신앙고백, 사회신경 등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한두 명만 대답한다. 이게 오늘 한국 감리교의 현실이다. 양적으로 성장하고 뜨거운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의 주류 교단이라고 자부하지만, 정작 감리교의 정체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와 초기 감리교회가 실천했던 공교회성이나 연결주의, 보장 파송제와 순회목회제도 등등 . . . 한국감리교회에서는 오래 전재 사라져 버려서 이제 이것들을 더 이상 언급할 의미도 사라졌다. 한국 감리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제 한국 감리교회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감리교회가 갖고 있는 독특성은 무엇일까?

필자는 20대 시절 감리교청년연합회 활동을 활발하게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청년 대표로 각종 국제 대회에 참여하여 세계의 다양한 감리교 청년들과 교류한 적이 있다. 또 운 좋게도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과 수시로 접한 경험도 있다. 그중 미 연합감리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3년간 파송받아 온 선교사 부부의 한국어 튜터로 이들의 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가까운 곳에서 삶을 목격한 바가 있다. 이분들은 “정의 평화 선교사”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해외 선교사 하면 교회를 개척하거나 학교나 병원 또는 자선 기관에서 사역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니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이런 임무를 갖고도 교단에서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선교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물음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이 분은 당시 한국의 민주화 문제, 통일의 문제, 핵 문제 등을 미국과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했다. 당연히 한국의 기독교연합단체나 시민 단체와 연대해서 일을 했다. 필자는 그 곁을 따라다니면서 자료 수집과 강연을 도왔다. 심지어 당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민중교회 운동을 미국에 알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서울, 대전, 광주, 대구 등의 도시빈민 지역에 위치한 민중교회들을 함께 방문한 적도 있다. 선교에 대한 필자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코로나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지 취약 계층, 비정규직 노동자, 노인, 장애인, 이주민, 난민 등 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바로 이들에게 다가가 보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청하는 목회요 선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낮아졌다. 2023년도 현재 국민 10명 중 2명만이 개신교회를 신뢰하는 현실이다. 지난 10여 년간 감리교인은 40여만 명이 감소했다고 한다. 이런 때 새로운 교회 갱신의 계기는 단순히 부흥회나 기도운동의 재탕으로는 마련되지 않는다. 오히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다가가 돕고 돌보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실천만이 변화의 새로운 전기를 이룰 수 있다.

이제 사회선교사 제도가 필요한 때이다. 사회선교사 제도야말로 감리교 사회신경의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는 가장 감리교다운 제도이다. 주님이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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