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시작하는 사순절 영적 여정
광야에서 시작하는 사순절 영적 여정
  • 이정순
  • 승인 2023.03.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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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유혹들이 있다. 돈과 명예와 권력, 쾌락 등 다양한 유혹을 겪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유명 셀럽들이 한순간에 유혹에 무너져 대중들의 비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이는 누구든 유혹의 예외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올해 사순절 첫째 주일에 등장하는 본문 (마태복음 4:1-11)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도 유혹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강한 유혹 말이다. 유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로 나가 40일 동안 금식하셨다. 그리고 유혹자로부터 시험을 받았다. 이때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이다. 아직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준비단계에 있다. 사순절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유혹 받으신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시작해야 할 사순절 영적 여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러시아 화가 이반 크렘스코이(1837-1887)가 그린 광야의 그리스도 / 출처 : 위키미디어코몬스

먼저,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시고 광야로 나가셔서 금식했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또 예수님은 금식 후 악마에게 유혹까지 받으셨다. 사실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야라 함은 준 사막지대이다. 풀 한 포기조차, 물 한 모금조차 찾아보기 힘든 곳이 바로 광야이다. 사람도 만나기 어렵고, 낮엔 더위와 밤엔 추위로 고생하는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야이다. 왜 예수님은 이런 광야에 나가셨을까? 생명과 성장과 축복과는 정반대되는 이런 거친 들에 왜 나가셨을까?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이미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정식 인증까지 받으셨다. 이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의도적으로 광야에 나아가 금식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철저한 영적 훈련을 의미한다. 광야라는 곳은 자신과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요, 철저한 고독과 내적인 싸움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곳이다. 예수님은 이 광야에서의 영적 훈련과정을 기꺼이 감당하셨다. 이런 영적 훈련과정 중에 겪는 세 가지 유혹의 이야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그런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이제 세상을 구할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참 종교의 창시자로서 세상에 나아가기 전 내적으로 가졌던 고민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가 평생 가졌던 인간적인 고민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삶의 유혹에 직면했다. 하지만 다른 점은 그가 이 유혹을 보기 좋게 물리쳤다는 것이다.

풍요와 번영과 성공 지향적인 이 시대에 광야와 같이 빈약하고 볼품없고 고생스럽고 하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것은 전혀 낯설게 느껴진다. 왜 굳이 그런 어렵고 불편한 생활을 자처해야 하는가 하고 쉽게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신앙은 잠시라도 이런 광야로 나아가는 삶을 요구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풍요와 번영이라는 세상 속에서 찌들어 버리고 메말라버린 우리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잠시 삶에서 물러나 자신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신앙인의 노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로 광야라는 곳이 이런 기회를 상징한다. 위대한 신앙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소명을 깨달았으며, 영적인 진리의 길을 발견했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사막에서 평생을 보낸 교부들은 예수님을 따라 광야에서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독일 화가 한스 토마(1839-1924)가 그린 그리스도의 유혹받으심 / 출처 : 위키미디어코몬스<br>
독일 화가 한스 토마(1839-1924)가 그린 그리스도의 유혹받으심 / 출처 : 위키미디어코몬스

올해도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순절은 자신을 살펴보는 기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광야로 나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바로 나 자신만의 광야로 조용히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신앙인은 바로 자기만의 광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수시로 광야로 나아가는 노력이 신앙인에게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찍이 미국의 시인 엘리엇(T.S.Eliot)은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시에서 광야를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여 신을 만나는 곳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엘리엇은 현대인이 자신 안에 목마른 사막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다. 이 사막에는 오직 갈증과 고통만이 있다. 인간은 이런 갈증과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이 움켜잡은 뿌리는 무엇이며, 무슨 가지가 이 돌투성이 쓰레기 속에서 자라나는가? 사람의 아들아, 너는 말도 추측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는 다만 부서진 우상 더미만 알기 때문에, 거기에는 햇볕이 내리쬐고, 죽은 나무는 아무런 피난처도, 귀뚜라미는 아무런 위안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다.”

이런 황무지와 같은 광야에서 우리는 영혼의 갈증과 고통을 넘어서서 참된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세상으로 뛰쳐나가려는 유혹을 이기고, 침묵 속에서 참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적으로는 거친 황무지에 불과한 것이지만,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풍요로워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겪으신 유혹은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겪는 유혹이다. 그것은 빵과 정치와 종교로 요약된다. 예수님은 어떻게 이 유혹을 이기셨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겼다. 인간적인 힘으로 이런 유혹을 이길 수가 없다.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으로만 이런 유혹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광야에서 유혹을 이기셨지만 악마의 유혹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누가복음 4장 13절을 새번역으로 읽으면, “악마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물러가서, 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에게서 떠나 있었다”로 되어 있다. 악마가 어느 때가 되기까지 잠시 유혹을 멈추었다는 뜻인데, 영어 성서(NIV)는 ‘적당한 때’(an opportune time)라고 더 정확히 번역하고 있다. 언제든 적당한 때가 오면 다시 유혹하겠다는 의미이다. 지금 유혹을 이겼어도 언제든 유혹이 닥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현실이다. 예수님도 인간이셨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마귀의 유혹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가 그린 그리스도의 유혹받으심 / 출처 : 위키미디어코몬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갖가지 유혹 속에서 고민하며 살아간다. 악마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와 더 많은 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라고 유혹하고, 더 높은 자리 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앉으라고 유혹하고, 당장 종교적인 기적을 추구하라고 유혹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세상으로 몰아넣고, 악의 세력에 복종하게 만든다. 바로 그럴 때마다 예수님이 유혹을 이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유혹이 바로 여러분의 광야이다. 이럴 때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담대히 이런 유혹을 이기기 바란다. 또한 광야에서의 유혹 다음에는 더 큰 하나님의 복과 계획이 놓여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사순절 기간, 여러분만의 광야에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예수님처럼 유혹을 딛고 진리의 대장정에 힘차게 나아가기 바란다.

“아, 빨간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피, 나의 뼈, 나의 살!

전적(全的)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강한 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애착, 모든 인습

그리고 모든 설움 모든 아픔을

전적(全的) 자아를 모두 태워 버리자.

아, 횃불을 던지라, 나의 몸 위에

그리하여 모두 태워 버리자

나의 몸에 숨겨 있는 모든 거짓, 모든 가면을

오 그러면 나는 불이 되리라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그리하여 불로 만든 새로운 자아에 살아 보리라.

(노자영의 시 “불 사루자”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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