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의 열매는 인생의 열매
입술의 열매는 인생의 열매
  • 서정남
  • 승인 2023.11.28 0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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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인적인 내용을 써보고 싶다. 호주로 오면서 2년간 딸의 가족을 못보고 영상 통화로만 서로가 근황을 전하였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호주에서 볼 일이 생겼다고 4일 일정으로 시드니에 왔다. 딸보다 더 반가운 사람이 있다. 바로 손자이다. 딸은 내가 손자를 오래 못봤다고 데리고 왔다. 이건 가장 큰 선물이다.

딸은 스무살 때 한국으로 가서 서른여덟 나이에 호주 땅을 다시 밟았으니 18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본다. 딸은 한국이란 무대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다니던 호주대학을 자퇴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무일푼인 맨몸이었다. 나는 당시에 타 교단에서 전도사로 재직했으니 물질 지원은 불가한 현실이었다. 남편은 파산하여 신불자 입장이었으니 딸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아홉 살 때 떠난 고국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회는 냉정하고 친척들마저 자퇴라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일사천리로 길이 열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암울하였다. 그러한 시간들 가운데 딸은 사촌 언니와 신촌의 카페에서 서로의 꿈을 나누었다. 자기는 노래로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어 하나님의 기쁨의 딸이 되고 싶다고 하였고, 사촌 언니는 요리연구가가 꿈인데 우선 그를 위해 스튜어디스가 되어서 세계를 다니며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는 서로가 허탈하게 웃었다.

딸은 낮에는 기획사에서 지도받고 밤에는 영어학원에서 강의하였다. 기획사 대표는 수강생들과 함께 군부대 선교를 하는 분이었다. 딸의 공연 시간에는 예수 믿을 결신자 군인들이 수없이 일어서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딸은 이모들의 협박성 제의에 못 이겨 한국대학을 다시 다니기로 하였다. 자신이 번 돈으로 대학입시 학원을 2달 다니고 치른 시험에서 이화여대 국제학부에 합격하였다.

면접 때의 일화가 있다.

면접을 다 마치고는 딸이 심사위원들에게 당돌하게 자기가 왜? 이화여자대학교에 꼭 와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해 좀 달라고 요청하였다. 심사위원들의 허락을 얻고 "나는 많은 달란트가 받았고 그것을 개발시켜주는 선진국에서 공부하였다. 이제 이 대학에서 한국을 더 공부하여서 한국과 이 대학을 빛내는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러니 꼭 저를 뽑아달라."

딸은 합격하였다. 재학 중의 딸은 국제학부 회장과 명사들 안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화여대를 방문하는 미국 힐러리 클린턴 여사, Kathleen Stephens 주한미국 대사 등 주요 인물들을 접견하며 야무진 꿈을 키워나갔다.

대학 3학년 때, 한 가요제에 자작곡을 들고 출전하였다. 놀랍게도 대상을 거머쥐었다!!!

신입생 환영회의 강단에도 유명한 아나운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강사로 세움 받기도 하였다. 이화여대를 빛낸 인물에 딸의 이름 세 글자가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다. 나의 6자매 중에 첫째와 여섯째가 이대 출신이건만 딸이 이를 해내었다. 아니, 주님이 하셨다! 간증자로도 세움 받았다. 딸이 입학시험 때 심사위원들에게 한 그 약속이 현실이 되었다. 이전에 신촌의 한 카페에서 꾸던 꿈들도 현실이 되었다. 딸의 사촌 언니도 스튜어디스가 되어서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러고 우여곡절도 거쳐야 했다. 딸은 지금 유명 작곡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도 하여 남편은 연예인 션과 같은 성품의 사람이고 슬하에는 남매를 두고 있다.

딸은 깜깜한 현실을 뚫었고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기도와 성실로 이루어 나가고 있다.

18년 만에 다시 온 호주, 자신의 이룸이 선물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과 자녀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에벤에셀, 임마누엘의 주님을 찬양하며 나는 뒤에서 기도로 돕는 조력자일 뿐이다. 딸이 다음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이기를 늘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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