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칸딘스키
바실리 칸딘스키
  • 서정남
  • 승인 2023.11.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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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가 호주에 왔다. 물론 그는 80여 년 전에 사망했으니 그가 남기고 간 유작이 온 것이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피카소, 마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화가이고 모네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러시아 출신이고 프랑스로 귀화하여 활동하였다.

호주의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는 지난해에 마티스 작품을 초대하였고 올해는 미국 솔로몬 R.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인 칸딘스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장시간을 감상하며 칸딘스키의 그림의 흐름을 시대별로 관찰하고 분류해 보았다.

1901년의 풍경화 몇 점은 취미 작 같은데 사실에 가까웠다. 1908~1910년의 작품은 초록과 빨강의 보색 대비로 강렬한 이미지이다. 1910년부터 추상으로 진입하며 색상변화도 눈에 띈다. 사실적인 형체를 버리고 기하학적 순수 추상화로 나아간다. 1920년 이후 그림에서는 음악과 미술의 하모니와 자유로움이 전달된다. 1935년 이후부터 화가는 설명을 줄여나가며 60대의 평온함과 절제가 그림에 담겨있다. 1943년,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 여태 보아온 색상 패턴과는 사뭇 다르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농익은 색상에 나의 시선이 오래 고정된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담긴, 달콤한 초콜릿 같은 조합이다. 모든 걸 다 받아들여 혼합한 색이다. 모든 것을 다 품은 아름다운 색이다.

내가 목사 진급 과정에서 논문에 참고 자료 표기가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내게 오는 감각대로 썼다고 하니까 "이 사람 이거 큰일 나겠네" 하며 야단치시더니 이내 그림 그린다는 걸 아시고 태도를 돌변하셨던 심사위원, 그렇듯이 칸딘스키의 작품에 대한 나의 품평도 눈과 뇌가 전달하는 나의 견해일 뿐이다.

화가란 뚜렷한 윤곽을 그려야지 흐리멍덩하게 그려서는 안 된다던 칸딘스키, 그러던 그가 화실에 거꾸로 세워놓은 자신의 그림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는 노선을 빠르게 전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그의 그림은 변화의 언덕을 여러 번 넘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비마다 변화의 매듭과 성숙으로 향한다.

한 목사님이 소셜미디어나 단체 대화방에서 독선을 뿜으며 자신이 맞음을 강조한다. 남이 보기에는 아닌데 말이다. 나중 깨닫고 나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한 목사님은 신학적 견해가 강하며 성경공부로 인해 많은 수의 팔로우를 자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로 노선을 급 우회하신다. 자기가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 축하할 일이지만 믿고 추종하던 팔로우들은 어쩌라고? 그래서 인간에게 <단언>은 참 위험한 것이다. 아니 미숙한 것이다.

칸딘스키의 작품의 흐름을 보며 나는 인생을 읽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많은 것을 안고 품는 포용을 나는 보고 느꼈다. 그의 그림은 뛰어난 명설교였다. 천성에 가까울수록 농익어 가기를 기도하게 만든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갈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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