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 크리스마스
언젠가의 크리스마스
  • 서정남
  • 승인 2023.12.2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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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이었다.

방과 후에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 그리는 것이 나는 수업의 연장이었다.

학원 학생들은 학교도 다양하고 나이도 다양했다. 우리 동급생은 6~7명 정도였다. 그러다가 나는 고3 때 서울로 올라가서 그 친구들이 어느대학으로 진학했는지에 대한 소식이 어둡다. 아니 그 당시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의 생애가 이 대륙 저 대륙을 건너 다녔고 바다도 몇 차례 건너다보니 과거는 안개속같이 아득하다.

이야기는 45년 후로 훌쩍 뛰어넘는다.

내가 한국에서 교회를 개척한 후인 것 같다. 바로 나의 아래 여동생은 목사이면서 사회활동의 폭이 넓어서 가사를 전담해 줄 사람이 필요하였다. 초반에는 조선족 입주 도우미를 두었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천하면서 출퇴근하는 분으로 바뀌었다. 새 도우미가 수년을 근무하였고 그분의 사정으로 새 사람을 찾아야 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동생은 기도하며 적임자를 구했는데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전화로 들었다. 새로 온 분이 요리 실력이 좋아서 우리 몫까지 많이 준비했으니 집에 들러서 픽업해가라는 연락이 왔다. 새 도우미는 나정도 연배로 보이는 경상도 아주머니이셨다. 입이 커서 함박함박 웃으셨다. 그 웃는 이미지가 좀 친근하다. 어디서 뵌 분일까? 나의 뇌가 또 빠르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분명하다.

기절할 노릇이다.

그녀가 맞는다면 이건 넘 슬픈 사실이니까 제발 아니어야 한다.

그날은 아무 일 없는 듯 포장해 준 음식에 대한 감사만 표하고 왔다. 집에 와서 전화로 동생에게 도우미의 고향을 물었다. 동생은 영문도 모르고 우리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한다.

미술학원의 동희가 확실했다. 이름도 확인이 되었다. 그녀도 나를 감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끝까지 아는 사이이면 안되는...

무슨 사연일까? 남편을 잘못 만난 것이다. 친정 아버지가 이혼을 허락하셔서 자녀를 남편에게 남겨두고 이혼하고는 친정에 가서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요리도 하고 돈도 벌자고 상경하여서 도우미 직업을 택한 것이란다. 장성한 자녀들과 이제는 출입하는 사이라고 한다. 동희는 동생네 가사를 완벽히 전담해 주었다. 덕택에 나는 동생 집을 자주 가질 못했고 꼭 가야 할 경우는 우린 서로 연극배우가 되어야 했던 웃픈 현실...

나는 동희가 자신을 드러내 주길 바랐었다. 그리고는 위로자가 되어 주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찢어서 열어 보일 준비가 미처 안 되었나 보다. 그녀는 이혼의 아픔으로 인해 교회출석을 시작하며 주님의 위로를 많이 받고 있다고 동생을 통해 들었다.

그래 맞아~ 우리는 이 땅에 연연하지 않고 천국에 소망 두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본인이 슬프지 않으면 그로서 good이다.

바라기는 친구가 자기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를, 그래서 자신을 더욱 귀히 여기기를, 그래서 더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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