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지식 때문에
그릇된 지식 때문에
  • 이구영
  • 승인 2024.01.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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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대로 세례 요한은, 세상 문화를 따르지 않고 어려서부터 광야로 보내져서 엣세네파 공동체에서 구약 성경을 쓰고 외우고, 율법을 지키며 살던 사람입니다. 아주 많은 시간을 기도했고, 금식도 많이 하던 사람입니다. 구약의 대표적 선지자였던 엘리야의 후예들답게 엘리야처럼 약대털옷을 입고 메뚜기를 잡아먹고, 야생의 꿀을 따 먹으며 살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 우리를 해방시켜주고 잘 살게 해 줄 메시야를 강력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는 어디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아주 가혹한 말씀을 하십니다.
[눅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세례요한은 신약에 나오지만, 그 가치관이나 삶이 구약의 사람입니다. 율법중심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천국에 간 사람이지만, 율법의 사람입니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세례요한을 생각하면 모세가 떠오릅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세는 지도자이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사람이었지만 자신들보다 못 한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세례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명감당 하였지만 이 땅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속에, 또 자유 함 가운데 성령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못 미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세례요한 이라 하여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 너희들이 이 땅에서 누리게 될 성령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보지는 못했다고... 복음은 그토록 귀한 것입니다. 모세와 세례요한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입니다. 세례요한은 엣세네파 공동체에서 정의와 심판을 배운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공의의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심판하시는 엄위하신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의 사랑의 사역, 긍휼히 여기심, 죄로 부터의 해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포로에게 자유를 주시기로 예언된 그분이 자신을 구해주지 않으시는 것에 실망 했고, 예수님을 불신했을 수도 있습니다. 율법은 아는데 복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눅 7: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세례 요한은 지금 실족한 상태에 있습니다. ‘실족하지’ 의 원어의 뜻은 ‘걸림돌이 되다, 혹은 ‘길 가운데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놓다’ 란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인격체로 하여금 그가 믿고 복종해야 할 자를 불신하기 시작하다’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공의와 심판을 배운 세례요한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있음을 외쳤고, 임박한 종말과 심판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심판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실족의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오해!
내 나름대로 가진 잘못된 지식들!
오늘 우리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공의와 심판자 하나님은 믿으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분노할 줄은 아는데 사랑할 줄은 모릅니다. 정의는 외치지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많이 부족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통해 메시야의 길을 예비한 위대한 선지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사역을 과소평가 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세례요한을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정의하시면서, 구약 율법시대, 행함으로 구원받으려던 자들의 한계를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욕심이 있습니다. 구약의 어떤 선지자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내면의 죄들.. 교만, 우상숭배, 거짓, 절망, 미움, 원망, 속임, 음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에서 찾으시고 계십니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 죽임이 아니라 살려냄! 정죄가 아니라 용서!
하나님의 나라에는 세례요한이라 할지라도 그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조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소망, 용서, 화해, 회개, 깨달음, 순종, 사랑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주어지게 될 것이라고...

여기에 구시대와 새 시대의 차이가 있습니다. 설교자 누가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의 전통, 습관 이제는 잊어버리고, 말씀 따라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자고....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서, 벌 받지 않으려고 따르는 율법적 신앙이 아니라 상급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순종하는 제자의 삶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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