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4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4
  • 안양준
  • 승인 2024.01.10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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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에서

성경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이 꼭 읽었으면 하고 추천할 책이 있다면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권하고 싶다. 물론 독자가 얼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소설은 이반 일리치가 근무하던 법원 건물 안에 막 배달된 신문을 통해 그의 죽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불치병으로 수 주일 병석에 누워있었고, 소식을 접한 동료들에게 그의 죽음은 그로 인해 생겨날 자리에 대한 생각 뿐이다. 

이반 일리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미망인으로부터 면담을 요구받지만 결국 남편의 죽음으로 국가를 대상으로 돈을 받을 수 있냐는 위선을 보며 불쾌한 감정만 일어난다.

고통과 죽음, 이런 것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한순간 소름이 돋지만 그것이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며 스스로 다스리며 장례식장을 빠져나온다. 장례식이 자신들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반 일리치의 삶을 세밀하게 조명한다. 그는 집안의 자랑거리였고, 모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 생각했고 엄격하게 실천했다. 법률학교를 졸업한 후 부친이 주선한 지방의 주 지사 촉탁관리로 부임한다. 

이후 예심 판사가 되고 지체 있는 집안의 딸과 결혼한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한 후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부부라는 것이 어느 정도 만족을 주는 것도 있지만 훨씬 더 복잡한 부담을 안겨준다는 것을 깨닫자 이를 피하는 방식으로 일에 전념한다.

뛰어난 직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검사보로 승진하고 이후 다른 주의 검사로 영전되지만 불화는 여전했고 자신이 노리던 법원장 자리를 후배가 차지하자 그때부터 그의 삶은 전락하기 시작한다. 3천 5백 루블이라는 연봉을 부러워할 사람은 너무 많기에 수입 이상으로 낭비한 탓에 빚에 쪼들리는 자신들을 알아주는 이들은 없다.

그런데 우연히 여행을 하다 만난 친구로부터 연봉 5천 루블의 높은 자리를 얻게 되자 그 동안 적개심을 품었던 이들과의 사이 뿐 아니라 부부 사이도 풀리게 되었다.

새롭게 살게 될 집을 멋지게 꾸미려고 가구를 사들였고 커튼을 갈려고 사다리에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며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치지만 금새 나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옆구리에 답답한 기분이 느껴져 의사를 찾아갔지만 마치 자신이 법정에서 취하는 태도와 흡사한 에야기를 듣는다.

약을 먹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된다. 통증이 심해지고 식욕도 갈수록 줄어든다. 이제 더 이상 속일 수 없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매사가 예전처럼 진행될 뿐이다. 

“글세 어쩌면 좋아요?” 

아내는 친지들에게 늘 그렇게 말한다. 법원에서도 모두들 머지 않아 자리를 물러날 사람 대하듯 힐끔힐끔 살피는 것을 느낀다. 이반 일리치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이러한 허위였다. 

그럼에도 하인인 게라심만은 거짓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만이 진실로 이해하고 또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그만이 지극한 정성으로 가엾게 여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고 말아요. 무엇 때문에 제 몸을 아끼겠습니까?”

허위 외에 이반 일리치를 괴롭히는 것은 누구 한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동정해 주지 않는 것이다. 모진 고통을 겪으면 사람은 그것이 아무리 창피스럽게 느껴질지라도 남으로부터 진정으로 동정을 받고 싶어지는 것이다.

혼자 있노라면 무섭고 침울해진다. 그래서 누구든지 옆에 불러 같이 있고 싶었으나 또 누가 곁에 있으면 더욱 침울해진다. 이제 죽음의 문제에 직면한다.

‘내가 없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역시 죽는 것일까…? 아니다. 죽기는 싫다…!’

새 중학생 교복을 입은 아들이 들어온다. 이 아들이 항상 가여웠다. 그 놀란 듯한 눈이 두려운 표정을 담고 있다. 게라심을 제외하고는 이 아들만이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 아프게 생각해 주는 것 같다.

자신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의 쇠약함, 무서운 고독, 사람들의 잔혹함, 신의 잔혹함을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이런 짓을 하십니까? 왜 저를 이리로 보내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정말 무엇을 위해 이런 혹독한 괴로움을 주십니까?’

이제 준비가 되었다.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 무서운 낙하를, 충격을, 파괴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말 끔찍한 고통이 닥치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만약 나의 생활이, 그 동안 의식적으로 꾸려온 나의 생활이 전부 틀린 것이었다면 어찌될 것인가?’

이런 생각은 전에는 꿈에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머리 속에 떠오를 때마다 일부러 물리쳐 버렸던 아주 작은, 깊이 숨겨진 것들이야말로 진실한 것이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옳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이 쓸데없는 것이고, 그런 사실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제 친숙해진 죽음의 공포를 찾아 보지만 눈에 뜨이지 않았다. 죽음은 어디 있지? 죽음이란 뭐냐? 아무 공포도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다.

“아아! 이것이었구나!”

갑자기 그는 소리를 높여 말한다.

“임종하셨습니다.”

죽음에 대해 「이반 일리치의 죽음」처럼 직면하는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다가올 죽음, 누구나 겪어야 할 상황이지만 애써 외면하려는 진실을 조금은 일찍 깨우쳐주는 고마움으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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