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1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1
  • 안양준
  • 승인 2023.12.20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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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속에서

작가와 작품은 어쩔 수 없는 연관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윤동주 시인의 경우 남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작품은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1945년 형무소에서 옥사한 짧은 삶, 그리고 사후 유고집으로 출판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전부이다.

시집의 첫 시가 서시(序詩)이다. 서시는 서문 대신 쓰는 시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를 독립운동가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그는 철저한 그리스도인이다. 독립운동가의 삶도 진실해야겠지만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은 신앙인으로서의 고백이다. 또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고 노래한 것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자세를 의미한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박경리 씨가 쓴 「토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명동, 거 훌륭한 학교입니다. 간도에선 일등 학굡니다. 아니지요. 간도 뿐이겠소? 조선 천지에서도 그만한 학굔 없을 게요. 작년에는 중학교를 새로 세웠고 금년에는 또 여자 학굘 세운다는 소문이오. 연해주, 만주 일대에서 왜 학생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지 아십니까? 그 구석진 학교로 말입니다. 유림의 보수파들이 모여서 만든 그 학교 안에 교회당을 세운 연유를 아십니까? 이상설, 이동휘, 훌륭한 분 많지요. 많고 말고요. 그러나 김약연 선생, 훌륭하신 분입니다. 훌륭하고 말고요. 좋은 교사가 있어야 좋은 학교가 될 거 아닙니까? 좋은 학교가 되어야 좋은 인재가 쏟아져 나올 것 아닙니까? 좋은 인재가 많이 나야 잃은 나랄 찾지 않겠습니까? 그 김약연 선생 훌륭하십니다. 그 골수파 유림이 말입니다. 좋은 선생 얻기 위해 예배당까지 지었다 그 말이지요. 신학문을 한 기독교 신자 선생이 그걸 요구했거든요. 그 결단이야말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참아낼 수 없는 결단이지요. 그러니 좋은 선생이 안 나오겠소?”

‘동만(東滿)의 대통령’이란 별호까지 듣던 김약연 목사가 윤동주의 외삼촌이다. 당연히 영향력이 없을 수 없다. 그의 시 십자가(十字架)처럼 대문을 나와 좌로 돌아 큰 길로 향하면 동쪽으로 떠올라 쫒아온 햇빛이 교회당 종각의 십자가를 비추는 광경을 늘 보았을 것이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그의 시는 일기처럼 년, 월, 일이 적혀 있다. 물론 시집은 시간순으로 배열되지 않지만 시를 읽으며 성장기, 방황기, 성숙기를 엿볼 수 있다. 1939년 9월에 쓴 자화상(自畵像)이란 시의 일부이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1942년 쓴 참회록(懺悔錄)을 읽어보자.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41년 5월 31일 쓴 십자가(十字家)는 그의 신앙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년 11월에 쓴 별 헤는 밤은 고향 북간도를 추억한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오래 전 영화화되었던 <동주>는 어떤 의미에서 고종 사촌인 송몽규가 더 크게 부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독립운동의 측면에서는 그가 더 활동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신앙적인 면을 강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요람처럼 느껴지던 명동촌도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민족주의 학교라는 자부심으로 입학한 연희전문 조차 ‘신사참배’ 문제에서 굴욕적인 타협을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을 다루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윤동주의 시 전체는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방황과 회개, 결단과 순종의 모습을 볼 때 그의 시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원동력이 됨을 발견할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죽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늘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승리해 나아가는 것임을 각성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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