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6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6
  • 안양준
  • 승인 2024.01.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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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나엘 호손의 「주홍글씨」 속에서

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 소설을 이 시대를 살아온 사람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큰 바위 얼굴은 거대한 암석으로 멀리서 보면 사람 얼굴과 흡사하며 장엄하고도 다정한 모습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교육이었다. 

주인공 이름은 어니스트로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처럼 큰 바위 얼굴을 한 실제 인물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큰 바위 얼굴을 한 위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진다. 하지만 엄청난 재산을 지닌 상인은 예언 속 인물이 아니었고 이후 유명한 장군과 위대한 정치인 역시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소설 끝부분에 어릴 적부터 큰 바위 얼굴을 보며 자란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이라며 그와 대화하던 시인이 외친다.

‘주홍글씨’ 역시 ‘큰 바위 얼굴’의 작가가 쓴 장편 소설이다. ‘주홍글씨’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책보다 당시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다나엘 호손은 1804년 미국에서 출생하였다.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한 그의 조상들은 엄격한 청교도 신앙의 사람들이었고, 특히 1692년에 발생한 ‘세일럼 마녀 재판’은 185명을 구속하여 19명을 처형하였고 이 사건으로 25명이 목숨을 잃었던 호손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역사에 가장 기록하기 부끄러운 치욕적 사건”이었으며, 무엇보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임명된 특별재판관 중 하나인 존 호손이 나다니엘 호손의 고조부였기에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이 사건이 ‘주홍글씨’를 쓰게 된 배경이 된 것이다.

헤스터 프린은 남편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녀의 남편은 암스텔담에 사는 학자로 부인을 먼저 보내고 뒤처리를 위해 남았다. 미국으로 건너오기로 한 남편은 2년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소설의 발단 부분에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처형대 앞으로 헤스터가 3개월 된 딸 펄을 안고 걸어 나온다. 모인 사람들은 그녀의 옷에 자신이 직접 수놓은 ‘A’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었다. ‘A’라는 글자는 ‘간통’을 뜻하는 ‘Adultery’의 약자이다. 

현재 남편이 없는 여인이 아이를 낳은 것은 당시 청교도 신앙의 기반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죄였지만 젊은 미인에게 타락의 유혹이 많았을 것이고, 남편은 바다 속에 빠져 죽었으리라 생각한 까닭에 처형대 위에 세 시간 동안 서 있는 것과 죽을 때까지 가슴에 치욕의 상징인 ‘A’라는 글자를 달아야 한다는 가벼운 판결이 내려졌다.

헤스터를 설득하여 회개시키고 영혼을 구하는 일을 떠맡은 이는 영국의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문을 전하기 위해 건너온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었다. 그의 웅변과 종교적 정열은 목사로서의 유망한 앞길을 약속받았으며 용모는 남의 이목을 끌만큼 뛰어났다. 그가 여인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한다.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 지상에서 받는 형벌이 당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데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과 함께 죄를 범하고 당신과 함께 괴로워하고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기 바라오! 그 남자에 대한 그릇된 동정이나 친절한 마음에서 입을 다물어서는 안 되오. 헤스터! 그 남자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수치의 단상 위에 함께 서야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 편이 차라리 평생을 두고 죄를 숨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하지만 헤스터는 고개를 내젖는다. 그런데 군중 틈에 그녀를 주시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헤스터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캐묻는다. 그는 이후 의사라는 자격으로 딤즈데일 목사에게 접근한다. 물론 그가 그녀의 본 남편이다.

7년의 세월이 지난 후 뉴잉글랜드 경축일 행사에 참석한 헤스터와 딸 펄은 교회당 안에서 울려나오는 딤즈데일 목사의 설교 소리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교회당 안은 초만원이 되어 그들은 처형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설교가 끝나자 광장에서 찬사가 사방에서 울려나왔다. 

그때 딤즈데일 목사는 헤스터와 딸을 부르며 처형대로 올라간다. 그리고 절규에 가까운 쉰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 여인이 달고 있는 주홍 글씨를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누구나가 다 이것을 보고 몸을 떨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디 있든지, 비참한 업고를 짊어진 이 여인이 안식처를 구하기 위해 어디엘 가든지 이 글씨는 그 둘레에 공포와 소름끼치는 혐오를 자아내는 기분 나쁜 빛을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낙인은 그 사나이에게도 찍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서 성직자가 다는 밴드를 잡아뜯자 표적이 나타나고 말았다. 목사는 격심한 고통의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승리를 거둔 사람처럼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서 있었다. 그러나 잠시후 그는 처형대 위에 털썩 쓰러져 버렸다! 

드러내지 못하는 죄악의 끌어안고 살다가 끝내 자백하고 영혼의 승리를 얻는 딤즈데일 목사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비록 육신의 죄는 짓지 않았지만 점점 악마화되어가는 헤스터의 본래 남편인 칠링워드 노인의 비참함. 소설 속의 대화에서 헤스터가 말하고 필링워드가 인정하듯이 처음부터 그녀에게 애정은 없었고 그런 체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사회 규범과 종교적 의식 속에 정죄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적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큰 바위 얼굴처럼 보여질 수 있어도 금방 본 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큰 바위 얼굴을 떠나지 않고 늘 옆에서 바라보며 살아왔던 어니스트가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이 될 수 있었다는 것.

또 나다나엘 호손의 단편 소설 중 ‘목사의 검은 베일’에는 밀포드 교회의 훌륭하신 후퍼 목사님이 앞 이마를 감싸는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교인들 앞에 등장한 것이다. 이 모습에 깜짝 놀란 교인들이 거부하지만 목사는 이를 끝까지 고집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의 운명의 시간에도 끝내 검은 베일을 벗기지 못하도록 한다. 

“얼굴을 감추는 베일 때문에 모두가 자신을 피하는 상황에서 친구가 친구에게, 애인이 애인에게 자신의 가장 은밀한 마음을 내보일 때, 인간이 자기 죄악의 비밀을 묻어 둔 채 창조주의 눈을 헛되이 피하려고 하지 않을 때, 그 때가 되면 상징 아래서 살아 왔고, 죽어 가는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시오. 나를 둘러싼 당신들을 둘러보니 당신들의 얼굴 위에도 검은 베일이 있소!”

나다나엘 호손은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신 앞에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 참된 신앙을 다른 이들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진정한 자유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죽기 전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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