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7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7
  • 안양준
  • 승인 2024.01.31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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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경 작가의 「죽음공장」 속에서

1999년 제1회 허균 문학상을 수상한 장주경 작가의 「죽음공장」이라는 소설이 있다. 

“시계 달력을 보니 2034:5:4:07:09라는 숫자가 일초에 한 번씩 깜박이고 있었다. 5월 8일이 이제 나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5월 8일은 15년 전 할머니가 한성에 들어간 날짜이기도 했다.”

다가오지 않은 35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중편소설로, 앞으로 사회적 이슈가 될 장례 사업을 주제로 작가의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이 소설이 출판되고 25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현실과 소설 속의 내용이 약간은 이질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로 인해 작품 수준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소설의 제목인 ‘죽음공장’은 별칭이며 정식 명칭은 한성사전사후종합관리주식회사(漢城死前死後綜合管理株式會社)이다. 한성은 가장 먼저 이 사업에 손을 댔고,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한 까닭에 죽음공장 하면 한성을 떠올린다.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전문가들은 모두 우려를 표명했다. 당시 노인이 되고 죽는다는 단순한 사실에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누가 봐도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벽제 화장터를 부순 자리에 지상 7층, 지하 5층의 ㄷ자형으로 좌동은 죽음 대기자, 중동은 임종자, 우동은 장례실로 지어졌다. 

2019년 5월 8일. 할머니가 좌동 2층 2인실로 들어갔다. 한성의 종합 사전(死前) 검진 서비스에서 죽음공장에 들어와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까닭이다. 4인실부터 1인실까지 침실이 있고, 6인실에서 4인실까지의 온돌방도 있다. 7층에는 특실이 있어 거부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방은 호텔 객실과 별차이가 없이 문 양편에 침대와 탁자, 소파, 서랍장과 냉장고가 놓여 있다. 창문 위에 화상 전화기 겸 TV가 올려져 있고 한가운데 커튼이 있어 방을 두 개 공간으로 분리할 수 있다. 할머니는 당시 102세였다.

노인들은 좀처럼 죽지 않는다. 세기 초반에 유아 성장 호르몬을 인체에 주입하여 노화를 방지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또한 유전자복제술과 동물장기이식술 등이 수명 연장에 기여하였다. 예순이 지나면 노인 취급을 받는데 그후로도 많게는 육십 년을 더 살게 되었다.

환자들이 득실대는 병원을 원치 않아 죽음공장은 개원 직후부터 노인들로 붐볐고, 이제는 병원측과 협의로 노인병으로 분류되는 치매, 대장염, 요도염, 뇌졸증 등 다양한 병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노인들이 병원을 싫어하는 이유는 병원이 노인을 싫어한 때문이다. 몇십 년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노인들을 감당할 수 없어 완치되기 전 쫓겨나다시피 하는 이들이 많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들을 죽기 살기로 고치려는 병원도 없었다. 

한성이 존재하는 지금, 노인 서비스가 있다는 것뿐 한성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병원에 가고 싶어하는 노인이나 부양 가족이 거의 없다. 한성에 자리가 없거나 한성에 보낼 돈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병원에 보낼 뿐이다. 

한성은 최첨단 생명과학을 받아들여 노인에 맞게 적용한 신종 사전 검진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금성과 같은 싸구려 공장은 사정이 다르다. 한성이 생기고 한동안 유사 기업이 속출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대거 도산했다.  

도산하지 않고 살아남은 몇 개 기업 중에 금성이 있었고 입실료를 낮추어 죽음공장의 대중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한성은 당시 일반실의 경우 1억을 내야 들어갈 수 있었고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해주었는데 금성은 이천만원에 회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신청이 쇄도하지는 않았다. 

한성은 노인들이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봉양했고 그 비용은 입실료에 포함되었다, 한성은 첨단 과학을 따랐지만 노인들의 소망에 충실히 답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한성은 누구나의 꿈이지만 금성은 피할 수 있으면 가고 싶지 않은 지옥이다.

2년전 결혼식 주례를 선 은사의 장례식 때문에 한성 벽제공장에 가게 되었다. 7층의 장례실은 대형 교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창문은 스테인드글래스로 장식되었고 전면의 대형 화면에 파이프 오르간이 나타났다. 시신이 들어서자 파이프 오르간이 전주곡을 울렸고 좌중은 일순 조용해졌다. 

장례를 마친 후에야 은사의 장례식이 거행된 회당은 여러 회당 중 하나인 것을 알았다. 장례식용 회당은 큰 것이 세 개, 작은 것이 다섯 개가 있었고 기독교, 천주교, 불교 회당은 대형으로, 통일교, 원불교, 천리교, 증산교, 기타종교가 다섯 개의 작은 회당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무교인 사망자를 위해서는 순번이 매겨진 천도실(遷度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무덤으로 내려갈 때 지하 공동묘지라는 불길한 인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일반 참례객은 일반 엘리베이터로, 유족과 시신은 따로 설치된 특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과연 장례식에 온 게 맞는가 의아할 정도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길게 뻗은 복도에 일렬로 늘어선 의사와 간호사, 조무사들이 있었고, 무덤에 들어가기 전 고인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친지 뿐 아니라 흰 에이프런을 두르고, 검은 치마와 바지에 흰 블라우스와 셔츠를 입은 한성 직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머리를 숙이며 어디선가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천장에서 은은한 황금빛 광채가 흘러나오는데 마치 천국에라도 온 듯한 분위기였다. 

처음에 한성은 죽기 직전 노인을 수용하여 수발들고 죽음을 인도하고 장례와 매장을 관리해주는 회사로 출발했고 죽음공장이라는 별명도 그때 생겨났지만 요즘은 양로원, 복지관의 기능이 통합되어 그야말로 종합 노후 관리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한성에 부모를 보내면 모두들 혹을 뗀 듯한 시원한 마음이라고 한다. 금성에 노인을 보낸 이들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는 않는다. 금성의 시설이 하류층의 살림살이에 비해 크게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괴로운 집단은 중류층으로 한성으로 가는 것은 상승이고 금성으로 가는 것은 추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독교 장례 사역을 하는 까닭에 장주경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인 한성이라는 사전사후 종합관리라는 시설이 실제한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본다. 타종교까지 아우르는 시설은 생각지 않지만 기독교 예식 장소로서 교회와 같은 건물과 웅장한 찬양과 성도들의 관심 속에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배웅을 하는...

좀더 확장하여 작품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사전(死前) 종합관리까지 곁들여 최대한 잘 보살펴드리는 시설이 만들어졌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누군가 이런 좋은 의도를 현실에서 이룰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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