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변모 주일, 다시 산 위에서
산상변모 주일, 다시 산 위에서
  • 이정순
  • 승인 2024.02.1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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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한국 주요 종교에 대한 호감도를 발표해온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이 최근 2023년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종교별 호감도 순은 불교, 천주교, 개신교 순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불교 호감도 52.5점, 천주교 호감도 51.3점, 개신교 호감도 33.3점, 원불교 호감도 29.4점, 이슬람교 호감도 14.3점 순으로 나타났다. 개신교 호감도는 한국의 3대 대표 종교인 불교, 기독교, 천주교 중 꼴찌로 나타났다.

물론 긍정적인 점도 있다. 세 종교 모두 전년도보다 호감도가 상승했다. 특히 불교와 가톨릭의 호감도가 크게 상승했다. 불교는 지난해 47.1점에서 올해 52.2점으로 5.4점 상승했고, 가톨릭은 45.2점에서 51.3점으로 6.1점 상승했다. 개신교계에 대한 호감도도 지난해 31.4점에서 올해 33.3점으로 소폭 올랐으나,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호감도를 기록했다. 특히 개신교 호감도의 특징은 비개신교인에게 '비호감도'가 매우 높다는 데 있다. 응답자의 절반인 49%가 개신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고 반응했다.

통계를 소개하는 것은 현재 우리 시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위함이다. 100% 확실한 수치는 아니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현재 우리 사회가 종교에 대해 인식하는 측면을 잘 보여준다. 기독교가 세상 속 종교일진데, 세상의 외면을 받는다면 언제건 사라지곤 만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할 때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국민 중 20대 10명 중 7명이 무종교인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탈종교화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다시금 사회 속에서 종교의 의미를 물을 때이다.

제임스 티소가 1886-1894에 그린 '예수의 변모'(출처 : 위키미디어커먼스)

해마다 사순절을 맞기 직전 교회는 전통적으로 산상변모 주일을 지켜왔다. 신앙 공동체로서 절기력을 지키며 신앙의 역동성을 체험하는 교회들은 주현절이 마무리되면서 산상변모 주일을 지키며 다시 한번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되새기곤 한다. 그만큼 산상변모 주일은 무시될 수 없는 중요한 절기 중 하나이다. 올해 산상변모 주일 본문(마17:1-9)에 따르면 어느 날 예수께서 수제자 3명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곳에서 신비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그들 앞에서 갑자기 예수의 모습이 변하여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 부셨다(2절)고 성서는 보도하고 있다. 예수의 모습 전체가 빛나는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때 구약시대의 지도자 모세와 예언자 엘리야가 갑자기 나타나서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는 장면도 벌어진다. 제자들은 놀라서, 신비가 일어난 바로 그 자리에 머물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바로 그곳에 있게 해달라고 예수께 간청한다.

하지만 그들의 간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대신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그들에게 울려 퍼졌다(5절). 새로운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소리를 듣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땅에 엎드렸다. 이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셨다(6-7절).

눈이 부시게 얼굴과 그 모습이 변하고, 신앙의 선조들이 나타나고, 구름이 몰려들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는 표현들은 전형적인 신비체험 현상을 잘 보여준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존재, 초월적 존재, 거룩한 존재를 체험할 때 일어나는 현상 그 자체이다. 바로 이런 신비체험이야말로 전형적인 종교적 체험이며, 종교의 본질과 관련된다. 신학자 루돌프 오토(1869-1937)에 따르면, 인간이 ‘성스러운 실재, 곧 거룩’을 만나거나 체험할 때 느끼는 원초적 감정을 ‘두려움, 떨림, 끌림과 홀림’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특히 거룩한 존재를 경험할 때 첫 번째로 느끼게 되는 두려움은 한편으로는 공포감을 일으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황홀의 대상으로 그를 사로잡는다고 그는 말한다.

타볼산 '예수 변모교회' 천정에 그려진 '예수의 변모'(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오늘 본문은 이를 전형적으로 묘사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변모되심을 통하여 신비 그 자체를 체험하고 먼저 그 자리에 머물기를 사모하지만 거절당한다. 흔히 신비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신앙의 전기를 마련하지만, 자칫 그 자체에 머물거나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기 자신에 빠져 만족하는 나르시시즘의 상태, 즉 자아도취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제자들 역시 “주여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 이곳에 초막 셋을 짓게 하소서 . . .”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주님의 관점은 단호하다. 한편으로는 갑자기 신비를 체험한 그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그곳에 머물지 말고 산 밑으로 내려가자고 그들을 재촉한다. 아무리 훌륭한 신비체험도 그 자체에 머물면 썩어서 악취가 나는 고인 물이 되고 만다는 경고를 하듯이 말이다. 오히려 본문은 신비체험으로 거듭난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역동적으로 그 거룩한 체험의 의미를 살아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산 아래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은 계속된다.

산상변모 주일은 여전히 참다운 신비체험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 거룩의 체험을 통해 다시 우리 존재 전체가 온전히 변화되어 새 힘을 얻고, 세상에 나가 변화의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종교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 시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힘을 얻을 곳은 어디인가? 새로운 종교개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이제 나만의 높은 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존재의 뿌리를 바로 세우는 참된 신비체험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온 존재가 철저히 변화되고, 새 힘을 얻어 다시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예수의 삶을 힘차게 살아낼 때이다.

주님, 흐르는 시간 앞에서 기도합니다

여전히 날은 춥지만 길었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음을 압니다. 이제 곧 봄이 옵니다. 봄이 된다고 그저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은 아니겠지요. 움츠리고 있던 몸과 마음을 펴고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준비하게 하소서.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이 아니라 다 같이 피어야 봄이지요. 서로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생명의 기운으로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흙덩어리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듯이, 얼어붙은 우리에게 봄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소서. 주님의 생기로 우리가 희망의 싹을 틔우고 사랑의 꽃을 피우는 봄을 맞겠습니다. (출처 : 청어람 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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