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을
  • 서정남
  • 승인 2023.08.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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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한 화가 클럽에 가입하였다. 9월에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서둘러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간 내가 붓을 잡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목사직에 대한 사명감이 희석될까봐 애써 참은 것이다. 은퇴가 가까우니 그 이후부터 주님앞에 서기까지의 가운데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자 다시 붓을 들었다. 작업시간은 나만의 동화나라 여행이다.

호주에는 나무가 위대하다. 문자 그대로 큰 나무들은 저마다 고령임을 과시하니 그런 나무의 위용을 정열의 색감으로 표현해 본다. 또한 잔디를 칠하면서 옛 애인과의 시간에 젖기도 한다. 오페라하우스를 강조하기 위해 바다에 떠 있는 요트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아리아의 선율에 빠져들어 본다.

종전에 그리던 성화는 핸드폰의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으로 그리니 판화처럼 다량 생산이 되지만 캔버스 그림은 긴 시간에 만들어 내는 only one이다. 갤러리 벽에서 누군가의 눈에 꽂혀서 팔린다면 나는 이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을까? 하여튼 공을 들인다는 것은 참 아픈 일이다.

외출할 때면 시간을 정지당한 채 집 지키는 그림이 나에게 SOS를 보내니 나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아이를 두고 나온 엄마처럼... 성도도 마찬가지다. 정성껏 양육하여 믿음을 성장시켰는데 말없이 떠나버리면 목사는 혼자서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한 공무원 취준생, 한국목회에서 우리 교회 앞에서 전도된 청년이다. 공무원 시험에 7번 떨어지고 나이가 차던 그는 새벽기도와 공 예배에 성실히 참석하였다. 첫 세례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창립일부터 출석하다가 떠난 성민 형제가 다시 돌아왔다. 번듯한 직장에 잘된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우리는 모두 환영하였다. 그는 예배 후 커피를 냈고 나는 취준생 청년에게 친구가 생겼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다음 주일부터 취준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집엘 가도 못 만난다.

나를 돕던 전도사님이 어렵사리 그를 만나보니, 실패라는 단어를 늘 품고 살던 그는 성공해 보이는 또래를 만나자 자신의 상처가 더 극대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온 성민 형제는 자신의 등장으로 야기된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잘 다니다가 세례를 받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취준생은 여덟 번째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그렇게 사모하던 공무원 신분이 되었다고 전해 듣는다. 그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믿음의 싹을 틔워 준 것이 나의 역할이었나 보다. 지금 이곳에도 아파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다. 이삭을 하나씩 줍다 보면 어느새 한 단이 될 것이다. 곳곳에 널려있는 이삭을 줍고자 나도 역시 곳곳을 쑤시고 다니는 중이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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