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5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5
  • 안양준
  • 승인 2024.03.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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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속에서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은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준 글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은 그런 보기 드문 인격을 지닌 한 인물,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적인 삶을 살다간 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4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알프스 산맥 위의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은 고원지대를 사흘 동안 걸어 버려진 마을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폐허 속에 발견되는 낡은 집들엔 옛날엔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거라 생각되지만 이제는 바싹 말랐고 비바람에 지붕도 없어진 대 여섯 채의 집과 교회, 그러나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에서 다섯 시간을 더 걸어도 여전히 물을 찾을 수 없고 그런 희망조차 없이 모두 메말라 있는데 저 멀리 작은 그림자가 서 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것은 양치기 목자였고 그곁에 서른 여 마리 양들이 누워 있었다. 

그는 마실 물을 주었고 돌로 만든 제대로 된 자신의 집으로 인도해 주었다. 살림살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조그만 자루에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테이블 위에 쏟아 놓고 하나하나 주의 깊게 조사하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했다. 

다음날 호기심으로 그를 따라 나섰다.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아 구멍을 만들고 그 안에 도토리를 넣고 다시 구멍을 덮었다. 정성스럽게 백 개의 도토리를 심은 후 다시 도토리 고르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3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십만 그루의 도토리를 심었다. 십만 개의 도토리 중에 2만 그루의 싹이 나왔고 산짐승들이 갉아먹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절반 가량이 죽어도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의 나이는 55세며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다. 지난 날 농장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뒤이어 아내를 잃은 후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개선해 보기로 결심했다고 하였다.

그는 만일 삼십년 후에도 하느님이 생명을 주신다면 그 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다 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미 너도밤나무를 번식시키는 것을 연구해왔으며 집 근처에 묘목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어느 정도 습기가 고인 땅에는 자작나무를 심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 다음해인 1914년에 전쟁이 일어나 참가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찾아갔을 때 그는 활력이 넘쳐 보였다. 어린 나무들을 위협하는 양들을 치우고 대신 100여개의 벌통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나무를 계속 심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이 10살이 되어 엘제아르 부피에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고 그가 키워 놓은 숲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폭이 큰 것은 11 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장비도 지니지 않은 한 인간의 손과 영혼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할 때마다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고 깨닫곤 한다.

마을로 다시 내려왔을 때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늘 말라붙어 있던 시내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1년 동안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지만 모두 죽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래서 단풍나무를 포기하고 너도밤나무를 심었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보기드믄 인격을 가진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완전한 고독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1939년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 때 목탄가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들 때문에 가스연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지만 도로망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포기한 일조차 알지 못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945년 당시 87세였다. 이제는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리고 샘이 만들어져 물이 풍부하게 넘쳐 흘렀다. 이제 희망을 갖게 된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산뜻하게 벽을 바른 새 집들 주위에 채소밭이 둘러싸였고 나사로는 이미 무덤 밖에 나와 있었다. 

건강한 남녀들, 소리내어 웃을 줄 알고 시골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수가 1만 명이 넘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의 빚을 엘제아르 부피에게 지고 있었다.

단순히 육체적·정신적 힘만을 갖춘 한 사람이 홀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조건이란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위대한 영혼 속의 끈질김과 고결한 인격 속의 열정을 생각할 때마다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낼 줄 알았던 그 소박한 늙은 농부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품게 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글을 다 읽은 후 느끼는 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별반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생각하는 장례 사역을 소명으로 받았기에 많은 고인분들을 모셨지만 진심으로 감동하며 존경할 만한 인물을 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순전히 이타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에 반대하는 이가 없는 고독한 삶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

신적 영역에 미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하신 의도가 엘제아르 부피에와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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