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8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8
  • 안양준
  • 승인 2024.04.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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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에서

「오만과 편견」의 저자 제인 오스틴은 1775년 영국의 작은 마을 스티벤튼에서 한 시골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열한 살까지만 정식교육을 받았고, 마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고장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오만과 편견」은 처음에는 ‘첫 인상’이라는 제목으로 내어놓았다가 후에 이름을 바꾸었는데 ‘오만과 편견’은 대부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 다아시는 엄청난 부와 외모로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불쾌한 그의 태도로 인해 인기가 오래 가지 못한다. 친구 빙리의 집에서 열린 무도회 중에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와 춤출 것을 권하자 “내 마음을 끌 정도로 예쁘지 않은데…. 난 다른 남자들에게 딱지 맞은 여자에 관심을 갖을 생각이 없네.”라고 한다. 이를 들은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다.

제인 오스틴의 묘사하는 세계는 영국 시골의 소지주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으로, 중심 소재는 남녀 간의 연애와 결혼에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이다. 적령기 여성이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 문제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되고, 신분이나 재산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 되고, 그들이 속해 있던 사회의 여러가지 관습들- 이 하나의 리얼리즘을 만들어 낸다.

이렇다 할 정식교육도 받지 않았고 인생 경험의 폭도 넓지 않은 한 여성이 어떻게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당시 시골 목사였던 아버지의 서가에 약 5백여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며 특히 사무엘 리차드슨이나 헨리 필딩 같은 소설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엘리자 양께선 카드 놀이가 싫으시대요. 대단한 독서가이시라 딴 데는 재미가 없다나 봐요.” ~ “첨가해서, 광범한 독서로 정신의 향상을 위해, 더욱 본질적인 뭔가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다아시가 덧붙여 말했다.

소설 속에서 은연 중에 독서 예찬이 등장한다. 실제로 시골 목사였던 아버지의 서가를 통해 독서광이 되었던 제인 오스틴이 바라보는 아버지는 어떠했을까? 그럼에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목사관은 대단한 혹평을 늘어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콜린스 목사에게 있어 후원자인 캐더린 부인은 신적 존재처럼 느껴진다.

“복종이라는 굴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원래 매우 비굴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으나, 세상 사람들하고는 동떨어져 살아온 박약한 두뇌의 사람이 지닌 자만심과 젊어서 뜻하지 않게 일찍 성공을 거둔 데서 오는 거만함 때문에 적지 않게 반작용을 받았다. 헌스퍼드의 목사 자리가 있었을 때 운좋게도 캐더린 드 버그 부인에게 추천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귀한 지위에 대한 숭배의 마음과 후원자로서의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목사로서의 자기 자신의 권위와 교구장으로서의 권리 따위와 한데 어울려서 결국 그를 오만과 추종, 자존과 비굴을 혼합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괴물 같은 존재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 당시 일반인의 시각에 비친 목회자의 모습은 권위는 내세우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굴종으로 변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가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가운데서 오만의 모습으로 서는 경우를 보게 된다. 믿지 않는 자들과 비교할 때 스스로가 구별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을 욕하는 자들에 대해 무조건 편견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피츠 윌리엄을 통해 최근에 잘못된 결혼을 할 뻔한 친구를 다아시가 구해준 일에 대해 들은 엘리자베스는 그 친구가 빙리이고 상대방 여성이 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언니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장본인이 다아시라는 사실에 분개한다. 그런 행동이야말로 ‘가장 나쁜 종류의 오만’이라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다아시가 다가와 엘리자베스에게 감정을 고백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열렬하게 찬미하고 사랑하는지 말하게 해주세요.” 

그의 말이 끝나자 냉담하게 청혼을 거절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그 말에 놀란 다아시는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자신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고 묻고 엘리자베스 역시 폭발하여, 다아시가 언니의 희망을 망친 사실을 환기시킨다. 

다음날 다아시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 자세히 설명한다. 제인과 빙리를 떨어지게 한 것은 빙리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제인이 빙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며 제인과 엘리자베스를 제외한 가족이 보여준 행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한다.

되풀이해서 읽을수록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하나하나 돌이켜볼 때, 다아시가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여인이 부유한 왕자를 만나 사랑을 꿈꾸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생각보다 부작용이 클 것이라 예상한다. 당장 사랑에 눈먼 순간은 어쩔 수 없지만 계속 장애물에 부딪히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누구나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다.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대상, 도저히 인정받을 수 없는 성도.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일광에 되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홀겨 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아 1:5-6)

‘아가서’에 기록된 본문은 솔로몬 왕과 노동으로 피부가 검게 그을린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이다. 주위 사람들은 왕의 총애를 받는 여인에게 눈총을 던진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 까닭에 시골 여인의 모습을 탈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자들이 이제 세상을 향해 오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모습을 바라보는 세상은 편견을 자신의 경험치로 삼는다. 주위에서 목격한 기독교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기억하며 기독교에 대한 반발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부딪힘의 대상이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독교인에게 세상은 가로막힌 담이 아니다. 왜 그들이 편견을 갖게 되었는지 들어야 하고, 오만으로 비치었던 잘못에 대해 해명해야만 한다. 부딪힘이 깨어짐이 아니라 얼싸안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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