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2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2
  • 안양준
  • 승인 2024.03.06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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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속에서

한 권의 책이 가져다주는 무게는 두께와는 별 상관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오랜 세월 검증되고 그리하여 고전의 범주에 속하게 된 책들은 대부분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또는 ‘기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에 매우 근접하게 다가가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기독교 진리를 잘 보여주시는 것이 “공중의 새를 보라 ~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 6:26, 28)는 구절이라 생각된다.

이 정도 수준은 어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것들이 살든 죽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도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말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으면 진정한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잘못된 인생에 대해 엿볼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애벌레는 의인화한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동식물들은 무엇인가를 먹음으로 살아가며 그로 인해 성장한다. 그렇다고 먹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무언가 조금은 더 거창한 인생의 목적이 있지 않을까?

주인공인 줄무늬 애벌레는 그에 대한 해답을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커다란 기둥에서 찾았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기를 쓰고 올라가고 있다. 꼭대기를 향해….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답은 “그건 아무도 몰라.”이다. 

꼭대기에 오르는 과정은 사방으로부터 밀리고 채이고 밟히는 충격적 모습이다. 거기에는 친구도 다만 장애물일 뿐이고, 자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밟고 있던 작은 노랑 애벌레를 만나고 사랑을 느끼면서 올라가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신선한 푸른 풀밭으로 기어가서 먹고, 낮잠도 자고, 껴안고, 싸우지 않는 현실이 너무 기뻤다. 

얼마 동안은 꼭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들해지고 자꾸 “삶에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그 이상의 것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금 기어오르는 삶에 대한 동경이 날로 더해간다.

노랑 애벌레에게 자신과 함께 가기를 청했지만 거절당한다. 결국 그녀를 두고 혼자 올라가는데 한 번의 실패 때문에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다그쳐 먹는다.

그런데 꼭대기 가까이 다다랐을 때 노란 날개를 가진 생명체가 기둥 주위를 자유롭게 나는 것을 보게 된다. 줄무늬 애벌레는 그 사실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노랑 애벌레는 이미 나비가 된 것이다.

이제 방향을 바꾸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애벌레들에게 “내가 꼭대기까지 갔었는데,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어.”라고 속삭이지만 올라가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그들은 아무도 주의해서 듣지 않는다.

“우리는 ‘날 수’ 있단 말야!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는 거야!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단 말야’!”

집으로 돌아온 줄무늬 애벌레는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이 난다.

“끝. …아니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인 것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에게 ‘삶의 목적’을 물어본다면 대부분 꼭대기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자신이 꼭대기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누군가에게 밟혀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더 높이 올라가려고 발버둥친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의문점을 갖게 하는 책이다.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고뇌에 찬 목소리로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우리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는가?

물론 노랑 애벌레와 줄무늬 애벌레처럼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내려와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며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삶의 일부는 될 수 있겠지만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책에서 가르쳐주는 답은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와 흡사하다.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이것이 기독교 진리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어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어둡고 캄캄해지기 시작하고 두려워하는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후에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될 수 있다. 애벌레와 나비는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동일한 존재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으로서의 죽음만이 아니라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변화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죽음, 이를 다른 표현으로 ‘거듭남’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원제는 「hope for the flowers」이다. 왜 ‘꽃들에게 희망을’ 일까? 애벌레에서 변화된 나비의 삶이 꽃들에게 유익을 주는 까닭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대상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나비가 되는 삶이 인생의 목적이 될 때 이 세상은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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