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밧세바
렘브란트의 밧세바
  • 서정남
  • 승인 2024.02.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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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부터 밧세바를 그린 그림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성도들도 성경 말씀을 이해할 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한 해석 방향에 따라 인식을 고정화하곤 한다.

17세기 화가 렘브란트는 밧세바 작품들을 통해 성서를 재조명시킨다. 1643년과 1654년의 두 작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관람자 관점에서 성경 속 밧세바와 다윗의 만남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밧세바의 행동은 수동적으로 일관했는데 임신 소식만큼은 불가피하여 전하였다. 요세푸스는 그 뉴스가 다윗을 자극하여 우리야를 전사하는 데 일조하게끔 했으며 밧세바의 목욕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주장한다.

밧세바에 대한 성서의 기록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왕의 모사인 '아히도벨'이었고, 아버지인 '엘리암'은 다윗의 용사 37인 중 하나였고 남편 '우리아'도 용사 37인 중 1인이었다(삼하 23장). 다윗에게 충성된 가문이다. 밧세바가 요부라는 암시는 없다. 아들 솔로몬의 왕위 쟁취를 위해 솔선했다가 아니다. 행동가는 나단 선지자였다. 나단이 먼저 밧세바를 찾아간다. 늙은 다윗 왕도 모르는 비상 시국을 전하며 자신의 계책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서 모자의 목숨을 구하겠으니 믿고 협조해 달라고 한다. 사랑했던 남편 우리야를 가슴에 묻고 산 여인에게 아들의 왕위 계승을 도운 나단의 활약과 그 역사를 성경은 밝힌다.

1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13)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렘브란트의 1643년 작품에서 밧세바는 다윗왕의 부름에 사뭇 들떠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10년 후에 그린 밧세바 2편은 실로 대조적이다. 그래서 그간의 렘브란트의 삶의 변화를 살펴본다. 부인 샤스키아와 10년을 살았는데 세 자녀는 출생 직후 죽었고 네 번째 아들(티투스)을 낳고는 그녀마저 세상을 뜬다. 그림을 주문한 고객의 불만족도로 인해 렘브란트의 작품 세계마저 추락한다. 아들의 유모로 입주한 여인과 불륜관계를 유지하다가 그 여인이 오늘날의 비속어인 미투로 고소한다. 렘브란트의 상습 낭비벽과 시대적 경제 상황 등의 요인으로 파산에 이른다. 부도, 고소, 가족의 죽음 등으로 그의 삶은 최고에서 최저로 급격히 추락한다. 부인 둘을 앞서 보내고 자녀 다섯을 앞세운 그 외로움, 궁핍이 성서와 더 밀착시켰는지 이즈음에 그는 명작들을 많이 남겼다. 주님의 마음을 닮으며 힘없고 외로운 자들에게 시선을 둔다.

밧세바는 다윗의 편지로 추정되는 종이를 쥐고 있다. 몸을 단장하면서도 그 편지를 놓지 못할 정도로 고심하며 기쁨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다. 발을 단장해 주는 하녀를 부러운 듯이 내려다본다. '나는 이 시간이 지나면 부르는 분 앞으로 가야만 한단다'라고 말하는 듯.

성경에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여성이 몇 있다. 아들 야곱에게 축복권을 쥐어다 준 행동가 리브가, 자신의 두 아들을 요직에 앉혀달라고 예수께 부탁하는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앉힌 밧세바. 렘브란트는 요세푸스에게 동의하지 않으며 재해석의 울림을 던진다. 주님께 받은 긍휼을 반사해 보니 그 속에 밧세바가 새롭게 보였을까? 대중이 던지는 소리가 아닌 그녀만의 아픔 속으로 화가는 들어가 준다. 나도 위의 여인들에게서 이제 밧세바는 빼기로 한다. 그의 그림에는 오디오 장치가 있는지 볼 때마다 소리가 들린다. "나는 너의 심정을 이해한단다"

렘브란트는 뛰어난 시각예술 설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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