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시간
가장 어두운 시간
  • 서정남
  • 승인 2024.02.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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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얻는 유익이 또 있다. 나의 암울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초심을 다시 붙잡게도 된다. 나는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일하던 학원에 사표를 냈으니 이후 수입은 전혀 없는데 어떻게 3년을 견뎠는지 계산되지 않는 계산이다.

지금 나는 이전의 나와 같은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비영주권 자가 호주에 체류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학생비자이고 그 비자로 가족도 체류할 수는 있지만 등록금이나 의료비 등은 또 다른 부담이다. 그러하니 가장은 직업과 학업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달려야 한다. 어느 한쪽 짐을 내릴 수도 없고 달리기를 멈출 수도 없다. 페인팅, 용접, 목수, 미장, 타일 등, 수입은 좋다지만 자녀들 학비와 비자 연장에 모두 쏟아붓는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자녀들이 공부해 온 과정이 아까워서 또 연장하게 된다.

나는 신학대학은 성역이고 피치 못해 들어온 곳이 아니고 주님의 절대적 뜻이 있으심이라고 격려한다. 사실 학생의 80% 정도가 소명을 받았고 몇은 이미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노동으로 누적된 만성 통증을 침을 맞아가며 일을 한다고 하니 맘이 아린다. 사방이 온통 막히고 사지가 묶인듯하다고 한다. 요셉도, 모세도, 바울도 그런 시간을 거쳤다. 나도 그 시간 속에서 세상적 세포들이 뽑히고 구워지고 숙성된 과정이었던걸 잘 안다.

햄을 만들려면 먼저 식용 노끈으로 고기를 단단히 묶어서 형태를 만든다. 끈이 풀리면 낭패이다. 그리고 오븐에 넣어 고열에서 굽는다. 겉과 속이 골고루 잘 구워져야 한다.

염색의 이치도 같다. 염료를 섞은 물에다 천을 집어넣는다. 바람으로 천이 움직이면 낭패이다. 죽은 듯이 물속에 들어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어야 골고루 잘 염색이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색깔로 잘 염색되려면 끈으로 동여 메인 듯이, 죽은 듯이, 물속에 푹 잠기어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그렇게 쓰임을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기를 기도한다. 잘 녹아들어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가 되기를 기도한다.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는 게 맞다.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다.

가장 어두울 때가 새벽 여명이 가까워지는 시간 아니던가? 성서와 예술이 나의 주된 강의이지만 말씀 붙잡고 연단의 터널을 통과한 나의 행보 또한 그들에게 힘과 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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