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0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30
  • 안양준
  • 승인 2024.02.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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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속에서

「유토피아」는 1516년 토머스 모어가 쓴 책으로 원제는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한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대단히 훌륭한 소책자’이다. 당시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대사가 되어 카스티야 국왕 카를로스와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대륙으로 건너갔다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네델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제자 ‘페터 힐레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소개로 포르투칼의 탐험가인 ‘라파엘 히틀로다이오’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토머스 모어는 라파엘의 다양한 경륜을 높이 평가하여 왕의 고문이 될 것을 권하지만, 라파엘은 이를 거절하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토피아」는 1,2권으로 나뉘어지는데 1권은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를 만나게 된 경위와 그가 여러 지역을 탐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토머스 모어가 그의 재능을 공적인 일에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왕의 고문직을 권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거절한다.

그리고 캔터베리에서 추기경과 법률을 공부한 평신도를 만나 당시 절도범에 대한 엄격한 형 집행이 이루어짐을 칭찬하며 대부분 교수형에 처해지는데도 여전히 많은 절도범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에 그것이 잘못된 제도라는 점을 밝히고 절도범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수컷 벌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남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귀족들이 많고 이를 따르는 가신들도 많은데 이들 역시 자기 생계 유지를 위해 어떤 기술도 배운 적이 없는 자들이라고 한다. 귀족이 죽으면 그 상속자가 초기에는 가신들을 유지하려 하지만 돌볼 처지가 못되는 경우 가신이었던 자들은 도둑질이나 강도짓 없이는 이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온 나라가 용병으로 차고 넘치는데 어리석은 정치인들은 나라의 안위가 전쟁 경험이 많은 상비군을 즉각 동원 가능한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안일해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곤 하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용병 같은 야수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국가에 해가 되는 일인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쓸모가 있는데 그런 자들이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켜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인클루저 운동에 관해 말한다. 15세기 말부터 대지주가 곡물 생산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양모를 생산하기 위해 기존 경작지를 울타리나 돌담으로 둘러싸서(enclosure) 사유지 표시를 하여 농업을 황폐화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농민들이 고향집을 떠나게 되고 일을 하기 원하지만 고용하려 하지 않을 경우 절도 행각을 벌일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폴리레로스라는 나라에서 절도범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2권에서 유토피아에 대해 소개하는데 천혜의 요새로 유토포스라는 사람이 정복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유토피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유토피아의 특징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공산사회’이다. 

그곳 백성은 매일 6시간만 일하는데 오전 3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은 후 2시간의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3시간을 일하며 모든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오후 8시경에 잠자리에 들어 8시간 동안 잠을 잔다. 일하고 식사하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개인의 재량에 달려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매일 동트기 전 새벽에 공공강좌들을 개설하는 것이 나라의 관습이며 백성들이 입는 옷은 성별, 결혼 여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평생 같은 옷을 입는데 보기에도 아름답고 활동하기에도 편하고 추위와 더위에도 적합하다. 

유토피아에서 노동을 면제받는 사람은 기껏해야 500명 정도로 구역 관리자인 200명의 시포그란토르도 포함되지만 그들은 시민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주어진 특권을 포기하고 노동을 한다. 노동이 면제되는 또 다른 부류는 학자들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노동자로 돌아가야 한다.

도시마다 4개씩 세워진 병원은 성벽 밖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환자가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에 청동나팔이 울리고, 주민은 해당 관청에 모여 맛있고 훌륭한 식사를 한다. 

유토피아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도 존경할 만한 것이 없는데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공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용도상으로 금은 철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단 그들이 막대한 금과 은과 자금을 비축해두는 이유는 비상상황에 대비하고 비축 자금의 주된 용도는 비싼 급료를 주고 외국인 용병을 고용하는 데 있다. 

그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행복에 관한 것으로 쾌락설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지만, 선하고 바른 쾌락 속에만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며 미덕만이 최고 선으로 이끈다고 본다. 거짓 쾌락을 구성하는 것은 좋은 옷을 입었다고 자신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착각, 어리석은 명예욕, 보석을 좋아하는 어리석음 등이다. 또한 참된 쾌락은 육체의 건강, 정신적인 쾌락들, 자연의 선물들이다.

그들의 종교는 미신적인 종교를 버리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종교를 받아들이는 추세로 기독교에 대해 열렬히 호응하였는데 기독교의 내용이 그들이 중시하는 가르침과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직자는 유토피아 전체에서 그 어떤 관리보다 더 큰 존경을 받는데 그 수를 극히 적은 수로 제한하여 주의 깊게 선별적으로 뽑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의 대부분이 죽음 후 내세에 무한히 행복한 삶이 준비되어 있다고 확신하여 병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표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애도를 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기 싫어하는 것은 악한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기고 희망에 가득 차서 기쁨 속에 세상을 떠날 때, 찬송을 부르며 고인의 영혼을 신에게 맡기는 기도를 하고, 시신을 화장한 후, 묘비를 세운다.

또한 불치병이거나 만성적인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경우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권고한다. “당신은 죽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내세의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면서 이 괴롭고 비참한 삶을 끝내야 합니다. 당신에게 죽음은 고통을 끝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현명한 행동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스스로 먹는 것을 끊거나, 마취 상태에서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지만 거부할 경우 이전과 다름없이 동일한 치료와 돌봄을 제공한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에서 ‘아니다, 없다’를 뜻하는 ‘우(οὐ-)’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τόπος)’가 합쳐진 단어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의미한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에 유토피아라는 나라가 존재한 적이 없음을 알기에 당시 사회적인 명망이 높은 토머스 모어가 자신의 주장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려 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라파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유토피아에서 시행된다고 말한 관습과 법과 제도 중에서 상당수가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나 “그가 들려준 모든 것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유토피아 공화국에서 시행되는 것 중에서 아주 많은 것이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바람이 하나의 희망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다.”는 말이 토머스 모어의 바람일 것이다.

라파엘이 “사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유재산이 존재해서 돈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곳에서는 정의롭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악한 자들이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하는 곳에 정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나,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극소수가 나누어 갖지만, 그 극소수조차도 언제나 행복하지 않고 대다수 사람은 궁핍하고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곳에 행복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말은 자본주의 가치관 속에 살아가는 이 세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무엇이 중심 가치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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