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8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28
  • 안양준
  • 승인 2024.02.07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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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속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에 등장하는 성경 구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닌 것이 자신의 실제적 삶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여지지만 그 이면의 영적 갈등, 실제 삶에서는 두 사람이 결혼하지만 –물론 행복한 결혼이라 할 수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죽음과 남겨진 일기로 마무리 짓는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인 알리사, 실제로는 두 살 위인 사촌 누이 마들레에느.

알리사의 어머니며 제롬의 외숙모인 뤼실르 뷔콜랭은 식민지 출신으로 고아인 그녀를 보띠에 목사 부처가 거두었는데 16세 때 퍽 아름다웠던 그녀에게 반해 제롬의 삼촌이 청혼하였다. 그녀의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제롬의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였는데 어느날 젊은 남자와 가출하였다. 그 젊은 남자가 집으로 찾아온 날 그때까지 알리사가 예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눈물에 젖어 있는 그 순간 제롬은 자신의 생애를 결정지었다고 표현한다. 

그녀는 음성을 낮추어 “제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불쌍한 아버진 아무 것도 모르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주일 보띠에 목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드무니라.”는 말씀을 읽는다. 말씀을 들으며 느낀 제롬의 감정을 적는다.

"나는 힘써 들어가야 할 그 좁은 문을 보았다. 잠겨있던 꿈속에서 나는 그 문을 흡사 압연기처럼 상상하고 나 자신이 그 사이로 애써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그러나 하느님의 축복의 예감이 섞여 있는 그러한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 문은 바로 알리사의 방문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리로 들어가려고 스스로를 억제하며 내 속에 이기심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비워버리는 것이었다."

이후 알리사는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 걸어다닐 만큼 강하지 못해? 하나님께는 혼자 걸어서 도달해야 돼.”
“그렇지만 내게 길을 가르쳐 줄 사람은 너야.”
“왜 그리스도 외의 다른 인도자를 찾을까…. 우리가 서로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 둘이 저마다 서로를 잊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때라고 생각하지 않아?”

사촌인 그녀의 동생 줄리에트 역시 제롬을 사랑하였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언니인 알리사가 알아차리고 제롬은 서둘러 알리사와 약혼하기로 결심하지만 알리사는 반대를 하였고 결국 작별하게 된다. 

“네 곁에서 나는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어…. 하지만 내 말을 들어 봐, 우리는 행복하려고 태어난 건 아냐.”
“그렇다고 영혼이 행복 외에 무엇을 택한단 말이야?”하고 나는 성급히 소리쳤다.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성스러운 것을….”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멋없게 변한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쳤다. 그녀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변해 버렸고 내가 조금 전부터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았으나 내 눈길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위대한 작가라고 칭하는 파스칼의 작품을 좋아하였다. 

“이번에 파스칼을 읽고 얻은 것은….”
“뭐야?”

그녀가 말을 중단했기 때문에 내가 물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야. ‘생명을 구하려고 애쓰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다.’ 그 나머지 것은….”

이후 줄리에트를 통해 슬픈 편지를 받게 된다.

"언니가 숨어 있던 작은 요양원을 찾아냈어요. 아아!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언니의 죽음을 알리는 원장의 편지와 언니를 다시 보지도 못한 에뜨와르의 전보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일기들을 소설 속에 담담히 읽어내린다. 

솔직히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다른 어떤 소설보다 어렵다. 물론 글에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감성 영역에서 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잘 이해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선 소설 속의 제롬 역시 감성 영역이 모자란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 알리사는 제롬에게 자신의 사랑을 수없이 표현했지만 결국 자신의 바람 대로 되지 않고 그로 인한 실망과 낙심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신앙이었다. ‘좁은 문’은 참된 신앙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그녀가 가야만 하는 길이었지만 그럼에도 일반인처럼 평범한 사랑을, 그리고 결혼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더욱 세상과 멀어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실제 신앙에서도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자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예가 쉽지 않다. 오히려 세상적으로 다가오는 고난이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물론 누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그로 인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알리사처럼 날마다 주님을 더욱 간절히 찾아야만 했던 아픔의 순간들이 좁은 문을 향해 더욱 깊숙이 들어가게 되는 영적 축복이었음을 앙드레 지드가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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