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님들께서 가장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권사님들께서 가장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 남광현
  • 승인 2024.01.0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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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명 감당하기를 기도하며 지내왔음에도 한동안 마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우들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일들로 힘들어하는 필자 자신을 보며 어떤 시인이 마음을 알아채고 동감해 주는 것 같아 읊조려 본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야 흔드는 영원(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純情)은 물껼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표(標)ㅅ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왜 이리들 아우성인가?

오히려 대놓고 싸우면 말리기라도 쉽겠다.

아닌 듯, 걱정하는 듯, 말리는 듯, 하지만 소문만 무성해 지는 뒷담화의 모습! 이런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교회 내 분위기가 조금씩 냉랭해져 가는 모습이었다.

“목사님, 심방 좀 해 주세요. 00권사가 어장 끝냈어요.”

“그래요. 권사님, 시간 정해서 알려주세요. 내려가겠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답을 건넸다.

문제의 권사님 가정 중 한 분이 심방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교 준비에 아픈 경험이 있어 기도로 말씀을 준비하는데 설교문은 정리되지 않고 왠지 모를 눈물만 계속 흐르는 것을 경험했다. 어찌어찌 마무리 짓고 심방하여 말씀을 전하는데 쉽게 말씀이 나가지 않고 성경 구절만 되풀이하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입 안 소리로 “아멘, 아멘” 고백하는 여 권사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에 어찌 말씀을 전했는지 모를 정도의 전심으로 함께 예배를 드렸고 한동안 서로 얼굴을 들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목사님, 감사해요. 그리고 제가 엊그제 00권사에게 전화했어요.”

“예?”

“00권사가 수술해서 병원에 있잖아요. 마음이 편치 않아 전화해서 수술 잘됐냐고 물었어요.”

“그러셨어요? 00권사님은 뭐라 하세요.”

“뭐, 서로 할 말이 있나요. 그냥 눈물만 나더라고요”

“잘하셨어요. 감사해요, 권사님.”

얼마 후, 수술하신 권사가 퇴원해서 집에 돌아왔기에 심방을 했다. 예배를 드리고 나니 같은 말을 건넸다.

“목사님, 저희 때문에 힘드시죠. 그런데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염려를 해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데 00권사가 전화했더라고요.”

“그러셨어요.”

“먼저 전화 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교회에 덕이 되도록 지내자고 말했어요.”

“잘하셨어요. 감사해요, 권사님.”

 

한 번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촌에서 사용하는 어장용 가는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면 비록 새것이라도 어부들은 칼로 끊어 버리고 만다. 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끊어 버림이 푸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마주했던 필자는 어부들과 같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기도만으로 수개월을 보냈다.

주님께서는 두 권사님 사이에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관해 목사가 아닌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두 분이 믿음이라는 손을 가지고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눈물 흘려가며 양쪽에서 풀어 왔던 것이다. 주님께서 근 일 년 만에 가느디 가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 주시며 필자에게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두 권사님께 같이 말씀드렸다.

“동백정교회 목회 20년 중, 권사님들이 가장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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