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0포기 희사하겠습니다.
올해는 60포기 희사하겠습니다.
  • 남광현
  • 승인 2023.11.26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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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에 김장철이 되니 늘 그러했듯이 마을의 분위기가 잔치 분위기다. 올 해 배추는 누구네 것이 좋다느니, 누구네 집이 몇 포기 김장을 한다느니, 바닷물은 누가 마련해 주었다느니 모두들 김장 준비에 관해 들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교회 분위기는 다르다. 너무 조용해서 당황스러웠다. 날씨가 따뜻해서 좀 늦게 준비하시려고 하시나? 아니면 연세들이 들어가서 더 이상 교회 김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 한 것일까? 마을 분위기와 달리 조용한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모님, 올 해도 교회 김장을 해야지요?”

“예, 성도님, 그런데 여선교회 회장님이 언제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직 없습니다.”

“사모님, 제가 언니한테 전화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올 해는 60포기 희사하겠습니다.”

“성도님, 올 해도 하시게요?”

“그래야지요, 우리 목사님께서 발이 넓어서 드리고 싶은 곳도 많으실 텐데 마음껏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요, 아직 바깥어른이 교회를 안 나와서 그렇지 이 정도는 제가 감당할 수 있어요.”

“매년 성도님의 헌신으로 교회 김장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감사해요”

“별 말씀을요, 솔직히 저도 기뻐요, 그래서 하는 것이지요 뭐.”

어떤 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해 전부터 교회에 새로 등록하신 성도님께서 교회 김장용 배추를 개인적으로 헌신해 주셔서 김장을 하게 되었다. 여장부처럼 당당하신 분이신데 주변을 살피는 데는 아주 섬세해서 이 곳, 저 곳 크고 작은 도움을 베풀며 사는 분이라고 소문이 난 성도님이시다. 교회에 등록하고 첫 번째로 필자를 감동시킨 헌신은 교회식당 식탁과 의자를 헌신하신 것이다. 필자의 한쪽 다리가 의족인 것을 눈치체시고 자신을 전도한 집사님과 함께 좌식이었던 교회식당에 식탁과 의자를 헌신하신 것이다. 이유는 본인이 볼 때, 목사님과 연세 높은 교우들이 앉고, 일어섬이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살핌은 당시 모든 교우들에게 헌신의 모델이 되었으며 공간이 좁아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쓸데없는 입을 닫게끔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사모님, 다음 주에 시간 괜찮으세요?”

“예, 권사님 무슨 일로 그러세요?”

“000 성도가 올 해도 교회 김장하라고 배추를 마련해 준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모님 시간되시면 다음 주에 하면 좋겠어서요.”

“권사님, 저는 괜찮아요, 그럼 여선교회에서 준비하시게요?”

“예,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절이고, 화요일에 속 넣는 것으로 알고 계세요.”

“예, 권사님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목사님께는 수육거리 준비해 달라고 해야겠네요.”

“매년 수육꺼리는 목사님께서 헌신해 주셨으니까 올 해도 해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리고 사모님, 양념꺼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뭐, 고춧가루는 먼저 빻아 놨구요, 배추도 낼 가져다준다고 하고, 주중에 파김치꺼리하고 양념꺼리 좀 준비하면 되고요, 젓국은 저희 것 쓰면 되지요.”

“예, 저희는 올 해 교회 김장은 어렵지 않나 생각했어요, 모두들 연세도 있고, 건강도 어려워서 감당하실 수 있을까 염려되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준비하신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교회 김장하는 날이면 마을 분위기도 그렇듯이 잔치하는 날처럼 모든 교우들이 함께 올라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입씨름이 나기도 하며 교회 구성원으로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이었다. 그런데 올 해 김장에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허전했다. 수육꺼리 준비는 필자의 몫이라 암묵적으로 정해 놓고 매년 준비해 드렸기에 올 해도 넉넉히 준비했는데 정작 속 넣는 화요일 아침에 달랑 4명뿐인 상황에 필자가 당황한 것이다. 이런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여선교회 회장이 말을 건넨다.

“목사님, 올 해 김장은 유독 맛있습니다. 맵겠지만 한쪽 드셔보세요. 배추가 달아요.”

“그래요 권사님, 한쪽 줘 보세요. 얼마나 맛있는지 벌써 궁금하네요.”

“000성도님이 올 해 배추가 실해서 좋을 거라고 말했는데 정말 좋아요, 목사님 보내실 곳 맘 놓고 보내주세요. 무려 60포기를 희사해 주었어요.”

목사의 마음을 읽고 교우들의 처지를 대변해서 에둘러 말씀하시는 권사님의 노련함에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몇 분들이 뒤늦게 올라와 갈무리는 잘 되었지만 잔치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감사함은 아직도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성도님께서 교회 생활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헌신한다는 말보다 희사한다는 말이 더 쉬운 성도님의 표현은 필자로 하여금 어촌교회에서의 사역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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