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의 동행 그리고 헤어짐
20년간의 동행 그리고 헤어짐
  • 남광현
  • 승인 2023.10.04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년 전 부임 당시, 교회 구성원 중 한 가정이었던 분이 용인으로 거처를 옮겼다. 타 교단에서 목회하시다가 조기 은퇴하고 어촌으로 낙향해서 성경 연구에 전념하시던 내외분 가운데 목사님은 10여 년 전 소천하시고 사모님께서 필자와 20년 지기가 되어 주셨는데 지난주 용인에 있는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신 것이다. 이주 계획은 2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막상 이삿짐을 정리하는 사모님을 뵈니 헤어짐의 준비가 덜 되어 있는 필자의 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하고, 무심한 듯 피하고, 헤어짐의 시간은 없을 것처럼 마주해 왔었지만, 사모님과 함께하는 마지막 주일 예배 시간은 사모님께 한 번도 시선을 주지 못하고 예배를 마치고 말았다.

은퇴하신 사모님! 함께할 때, 시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필자 내외는 20년 전부터 젊은 목사와 사모 옆에서 묵묵히 기도와 헌신으로 도와주던 아주 든든한 기둥과 같은 분이셨기에 헤어짐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사 전날, 남겨두었던 책을 정리해 교회로 가져올 때 사모님에게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음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목사님께서 늦게 목회를 시작해 은퇴하기 전까지 목회 열정이 남달라 가정 형편보다 목회 우선의 생활만 고집함으로 때로는 가족 모두가 목사님이 소장한 책장의 많은 외상 책을 집 밖으로 내다 버리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목사님의 목회를 지지하는 가족들로 살아내기에 고생이 컸고 어려움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필자와 교제를 나누던 목사님을 생각해 보니 일흔이 다 되었음에도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성경과 씨름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와중에 치매 증상이 나타났던 것도 기억한다. 예상치 못한 치매로 가족들이 힘겨워했었고 결국 요양병원에서 소천하시기까지 생활했던 일도 사모님과 함께 기억한다.

필자 내외는 늘 조용조용 말씀하시고 연세에 비해 젊은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시는 사모님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숙함과 고귀함을 배우게 되었으며, 가끔 자제분들이나 며느리, 그리고 손녀들과의 전화 통화 가운데서도 신앙적 대화의 본을 배우기도 했다. 특별히 사모님의 큰 언니와 만남은 필자 내외에게 큰 위로와 도전이 되기도 했는데, 90대 중반까지 교회 전도 대원으로 헌신하시고 98세의 연세에도 교회 여전도회 활동에 참여할 만큼 건강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는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 전, 사모님과 함께 권사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연세에 아파트 주차장까지 마중을 나와 주셨다.

“목사님, 먼 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권사님 왜 내려와 계세요?”

“오신다고 하니 반가워서 내려왔지요. 멀리서 오시는데 당연하지요”

“권사님, 감사해요, 건강하시지요?”

“예, 주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지요. 그나저나 이렇게 뵈니 좋네요”

“언니, 화장하셨네요”

“그럼, 목사님 오신다고 해서 분칠 좀 했지”

98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말씀의 재치가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생을 보내시고 교회 중심의 삶을 이루어 가시는 언니 권사님과 동생 사모님의 모습이 너무 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용인으로 이사하고 80이 넘어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노 사모님의 삶이 오늘도 궁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사모님, 이제 정리는 끝내셨지요? 건강은 어떠세요?”

“목사님, 너무 편해요. 그런데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했어요”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천천히 결정하세요. 장보기는 어떠신가요?”

“도시라서 그런지 가까이 있어서 좋아요, 큰 마트도 10분 거리에 있고요”

“예, 사모님 곧 올라가서 뵐게요. 아드님이 장만해 주신 아파트 좋으시죠?”

“참 편해요, 그리고 아파트 거실에서 보면 바로 앞에 산이 보여서 좋아요”

든든한 기둥처럼 의지하며 지내온 20년 지기 사모님과 헤어짐이 여전히 서운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