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편에 항상 계시던 집사님
마음 한편에 항상 계시던 집사님
  • 남광현
  • 승인 2024.03.1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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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목사님, 주무시는데 전화 드렸습니다.”
“권사님, 아닙니다. 제가 아직 사무실에 있어요.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000집사님이 돌아가셨답니다. 소식 못 들으셨지요?”
“예, 못 들었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아시나요?”
“파주인 것 같고요, 장례는 서천에서 모신다고 연락이 왔어요.”
“작은 아버지 목사님께서 장례를 집례하실 것 같은데 모르겠네요.”
“제가 목사님께 전화 드려 보겠습니다.”

필자의 마음 한편에 깊이 남아 있던 60대 남자 집사님께서 소천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는 새벽이 맞도록 그 집사님과 십 수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목사님, 청소기 좀 빌려 주세요”
“예, 집사님 그러세요, 급하세요? 급하지 않으시면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급하진 않은데요, 그러세요.”
“예, 제가 교회로 들어가는 대로 오후 늦게라도 가지고 내려가겠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집사님과의 통화 내용이다. 이 일 때문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목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통화였었다. 목사가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자 집사님으로는 당시 젊은 분이라서 교회의 힘든 일들을 묵묵히 감당해 주시던 분이셨기에 필자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런데 그 분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갈등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교우들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실수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분명한 것은 필자가 전화를 받고 바로, 청소기를 가지고 내려갔어야 할 일이었다. 마음 여린 집사님이 여러 날, 홀로 집수리를 하는데 누구하나 관심도 보이지 않고, 목사도 남 일인 듯 거들 떠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 혹시나 해서 힘들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목사의 말이 당장도 아니고 시간 날 때 내려가 보겠다는 식으로 들리니 그 마음이 어떠했겠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와주고 베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이었기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일들이 많아서 어머니 권사님은 늘 안타까워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결혼을 했으나 부인의 고질적 질병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아픔을 이기기 위해 몸도 살피지 않고 더 열심이 일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가족들의 권면으로 다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화장실 청소를 감당하겠노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여러 해 동안 지켜냈다. 그 와중에 또 갈등이 생겼는데 이번에는 친인척과의 금전관계 문제였다. 결국, 다시 교회를 떠났고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마을에서 두어 번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서로 어찌할 줄 몰라 마음에 있는 말은 건네지 못하고 일상의 인사만 주고받았다. 그 후 당뇨 합병증 증세로 위험한 상황을 겪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권사님과 형제들이 있는 파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던 집사님이 혼자서 살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을 잃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배움이 적어 한이 되고, 마음이 여려 이용만 당하는 것이 형제들 사이에 아픔으로 남아 있던 집사님 이였기에 오히려 잘 된 선택 아닌가도 싶었지만 떠난 후에 필자에게는 여전히 남겨져 있던 아픔이었다.

목사가 든든함을 느꼈던 것처럼 집사님도 목사를 통해 고향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어야 하는데 이유가 어찌됐든 실망하게 되고 교회를 외면하게 되며, 결국 생의 마지막을 병상에서 힘들게 지내야 했던 집사님을 생각하니 마음의 무거움이 잠을 몰아내 버린다.

“목사님, 남목사입니다.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예, 목사님, 장례는 유족 분들과 함께 제가 집례 할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예, 감사합니다.”
“입관예배와 발인예배에 교우 분들과 함께 해 주시면 좋겠어요.”
“예, 목사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목사의 마음 한편에 항상 있었던 마음 여린 집사님, 한 밤중에 전해 듣는 집사님의 소천소식은 견디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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