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여름휴가 다녀오세요.
목사님, 여름휴가 다녀오세요.
  • 남광현
  • 승인 2023.09.0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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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마음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생과 사가 달린 만큼의 큰 어려움을 겪고 난 뒤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필자에게 있어 교회 공동체에서 경험하는 일들 가운데 견디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환우들과의 헤어짐이다. 좋은 신앙관계 속에서의 헤어짐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정되어 그나마 위로를 삼지만, 누가 보아도 의심될 수밖에 없는 신앙관계 속에서의 헤어짐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부족함을 한껏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된다. 15년 가까이 병상에서 고생하시던 성도님이 돌아가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조문할 때, 홀로 신앙생활하면서 보여주었던 그 신앙결기를 찾아 볼 수 없는 장례식장의 모습 속에서 다시 한 번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필자의 마음이 먹먹함을 살펴보았는지 주일 예배 후 장로님 내외분께서 잠시 보기를 청하고 말씀하셨다.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유”

“예, 장로님 어떤 일로요?”

“목사님, 이번에는 저희 말을 들으셔유?”

“예, 권사님 무슨 말씀이신데요?”

“목사님, 사모님, 올해는 아무말씀하지 마시고 무조건 휴가 다녀오세유”

“그래요, 사모님하구 애들하구 같이 여름휴가 다녀오세유, 많지는 않지만 저희 가정에서 준비할거예유, 물론 재정에서도 준비하겠지만유”

“장로님, 권사님, 마음은 너무 감사한데요, 제가 그럴 상황이 아닌 것 잘 아시잖아요. 건강이 회복되면 가지 말라고 말리셔도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올해까지는 계획이 없어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예유, 저도 우리 목사님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서 어렵다고만 생각했었어유, 그런데 지난번 이덕주 원로목사님 설교말씀 들으면서 교회에 계시면 신경 쓸 일이 많고 더 쉬셔야 하는데 쉬지도 못한다는 것을 생각했어유. 그러니 아무말씀 마시고 이번에는 무조건 다녀오세요.”

“감사해요 권사님, 장로님 가정 덕분에 저희 내외가 늘 힘을 얻습니다.”

생각건대, 올 여름 나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수술 후 회복의 더뎌짐이 견디기 어려웠고 교회공동체의 갈등은 왜 그리 크게 보여 지던지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참 좋은 신앙결기를 보여주었던 성도님의 소천 소식은 힘듦의 가중치를 몇 배나 더하게 했다. 이런 필자의 모습을 장로님 내외분이 읽으셨던 것이다.

“목사님, 저희뿐 아니라 교인들 전부 걱정해유. 우리 목사님 빨리 회복되셔야 하는데 일이 너무 많다고 염려가 이만 저만 아녀유, 그러니 딴 생각 마시고 이번에는 저희 말 들으시고 다녀오세유”

“다들, 목사님 걱정해유, 아직 몸도 성치 못하신디 아직 일 욕심 부리시면 안 된다고들 걱정해유”

“장로님, 권사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았습니다.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모른척하고 여름휴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셔유. 그래야 저희들도 마음 편해유”

80이 넘은 장로님과 권사님 내외분의 목사가정 사랑을 마음에 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교우들의 염려와 기도가 여전히 필자로 하여금 교회공동체 안에 머물게 하고 있음을 또다시 깊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 감사하고, 면목이 없는 일이다. 여름휴가 날짜를 결정하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시간을 맞추고, 주일 주보에 안내하고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장로님 내외분이 흰 편지봉투를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목사님, 많이 못 드려 죄송해유, 생각으로는 더 하려고 했는데 노인네들이라 형편이 못되네유”

“무슨 말씀을요, 아직 예배도 회복하지 못했는데 교회 비우는 것도 마음이 편치 못해요, 그냥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안 돼요 목사님, 이건 저희가 이미 생각한거예유, 작지만 잘 다녀오세유”

던지듯 필자의 손에 건네주고 차에 오르는 장로님 내외분의 모습이 참 편해 보였다. 무심히 사모에게 건네주려던 순간 봉투 겉면에 써 주신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비뚤 비뚤 써 내려간 그 글귀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필자 내외는 그 자리에서 눈물 한바가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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