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손자가 병원에 입원했대유
막내 손자가 병원에 입원했대유
  • 남광현
  • 승인 2024.01.2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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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가대가 없는 어촌교회에서 예배시간에 특별 찬송 순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누군가가 순서를 요청하면 설령 주보에 순서가 없더라도 기회를 마련해 주게 되는데 이런 순서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소천하신 김 권사님은 단골 특송 멤버셨다. 집 앞 텃밭에 봄 파종이 잘 되었다고 특별찬송, 부인 권사의 생일이라고 특별찬송, 가을 김장 배추 알이 잘 뱄다고 감사 찬송, 거름 덕분에 가을 무가 굵게 자랐다고 특별찬송, 한 해 동안 건강 지켜주신 은혜에 특별히 감사하며 찬송을 드리겠다고 예배 중에 특별찬송을 드렸다. 특별찬송을 드리는 내용은 이렇게 모두 달랐지만 찬송은 구 찬송가 502장(새찬송가 445장) 한곡이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않네 하늘에 영과 하늘에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모든 교우들이 김 권사의 특별찬송의 곡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며 교우가정의 심방 중에라도 그 찬송은 김 권사님 가정 찬송이라고 인정 할 만큼 알려진 찬송이 되었다. 특이했던 점은 특별찬송을 부를 때 부인 권사님은 늘 예외였다는 것이다. 왜 그랬는지 묻지는 못해봤지만 김 권사님의 신앙 이력을 살펴볼 때 일생을 어부로서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내면서 생명 지킴에 대한 하나님 인도하심과 사랑의 갈급함을 누구와 나눈다는 것이 익숙지 않는 탓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런 모습은 다른 교우들에게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해도 조용하다. 목사의 수술 전 위로 기도보다 수술 후 회복의 기도가 그들에게는 편하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보다 해결되고 난 뒤 무용담처럼 내 놓는 말에 익숙하다. 김 권사님의 믿음의 여정에도 이러한 삶에 모습이 베여 있었다고 여겨진 것이다.

김 권사님이 소천하고 맞이한 어느 성탄절 가족 찬양을 드릴 때 여 권사님께 기회를 드렸더니 부르시겠다고 한 찬송이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였다. 그리고 이 찬송을 아들과 손자들하고 함께 교회에서 부르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남편이 일생을 품고 찬송하던 그 의미를 기억하며 여전히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외아들이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김 권사의 생전에 기도 제목이 응답되었다고 기뻐하셨던 여 권사님이 3주째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따님들 댁에 가기 전에는 없었던 일이었기에 필자의 처가 전화 심방을 하게 되었는데 그저 몸이 불편해서 교회 나가지 못했다는 말뿐이었다. 좋아하시는 순댓국집에서 순댓국 한 그릇을 포장해서 심방해 보니 말하지 못했던 가정 일이 있었다.

“권사님, 저예요”

“사모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유?”

“얼마나 아프시기에 3주나 교회에 못 오시나 해서 들렀어요.”

“노인네가 항상 그렇지유 뭐”

“권사님, 무슨 일 있으시지요?, 함께 기도할 테니 말씀해 주세요.”

“자랑할 일이 아니라서유, 막내 00이가 아퍼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일주일째 뭔 병인지도 모른데유”

“그런 일이 있으시면 교회로 기도요청을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뭐 자랑할 일이라고 전화해유, 왜 아픈 지만이라도 알면 좋겠는데유”

“권사님, 저희도 교회에서 함께 기도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잖아요.”

“그거야 믿지유, 그런데 맘이 편치 않아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분명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 손자의 병원입원과 치료에 있어 답답함이 본인의 마음과 몸까지 상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권사님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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