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암을 이긴 만능 집사님
혈액 암을 이긴 만능 집사님
  • 남광현
  • 승인 2023.07.03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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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넘은 어촌교회에서 비교적 젊은 교우들이 교회 공동체의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창립 기념주일 예배를 준비할 때, 식사를 계획하고 마을에 나눌 떡을 마련하는 일 등에 있어서 결의가 필요한 경우, 현 임원들의 언권보다도 연세 드신 구(舊) 임원들의 언권이 더 크게 반영되는 것이다. 물론 필자가 섬기는 교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 생각되지만 오래전부터 해 오던 일이기에 과거의 경험들이 우선될 수밖에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책임의 무게 때문에 젊은 교우들에게는 분명 부담스러운 결정이 될 수 있어 선 듯 나설 수 없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열정이 넘치는 한 중년의 집사님은 교회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재치 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목사님, 우리교회도 고령화된 교회가 맞지요?”

“예?, 아니요, 주변 교회에 비하면 우리교회는 아직 괜찮은 편이지요”

“제가 교회일 하면 목사님 신경 쓰이게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집사님, 무슨 말씀을요, 제가 신경 쓰는 일 없어요, 모두들 해야 할 일들을 잘 아시는 걸요”

“목사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교회가 더 좋아질 겁니다.”

대학에서 치과 보철을 전공하고 지역 치과들과 일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관련 사업을 해 보려고 시도했을 만큼 꿈이 많던 남자 집사가 목사를 생각해 주며 건네는 말이다. 그 많던 꿈만큼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도 다양해서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인 분인데 건강의 문제로 모든 일들이 차선이 된 집사이다. 새롭게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고 현재는 어촌교회의 교육부장과 재무부원으로 섬기고 있다. 눈썰미가 너무 좋아서 필요한 것 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만들어 낼 뿐 아니라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이라는 것을 몰라 자비량이라도 해결을 해 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으로 교우들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에게 고마운 분이라고 인정받는 집사이다. 언젠가는 기념관 카페에서 커피를 나누는데 자꾸만 커피 에스프레소 머신 있는 쪽을 주시하더니 집에 돌아가 부인 집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기념관 카페가 너무 밋밋하지 않어?”

“뭐가요? 우리 기념관 카페정도면 좋지, 머신도 좋고, 커피도 좋고, 공간도 넓고…….”

“다 좋은데, 앞이 너무 허전한 거 같지 않어?”

“조금 그렇기는 하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고목(古木)으로 인테리어 전등을 만들어서 걸어주면 어떨까?”

“결국 그거 하고 싶은 거였어요. 아유,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누가 말리겠어요, 목사님하고 상의해 봐요”

부인 집사의 말이 오래전부터 보관해 오던 좋은 나무가 있는데 이것으로 인테리어 전등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하던 것을 지나쳐 들었는데 건강 때문에 손 놓고 있다가 기념관 카페에서 다시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필자와 동갑인 남자 집사는 50대 초반에 혈액 암 판정과 심장관련 질환으로 매우 힘든 수술을 수차례 받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기적같이 살아가고 있는 분이다. 이런 분이 제안을 해 올 때, 필자는 답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기념관 카페에 너무나도 특별한 고목(古木) 인테리어 전등이 설치되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방문객 중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전등 구입에 관해 문의할 만큼 카페의 볼거리가 되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회 앞에서 바다 주변으로 기증 받은 땅을 바라보며 그 집사에게 필자의 속내를 보였다.

“집사님, 우리 지난번 배 운항 면허증 땄듯이, 포클레인 운전 면허증 땁시다. 그리고 포클레인 한 대 삽시다. 기증 받은 땅 작업하려면 아무래도 몇 년은 걸릴 것 같은데 매번 불러서 작업할 수 없을 것 같이요,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목사님, 좋지요. 그런데 목사님이 불편해서(오른쪽 다리 장애) 어떻게 하시겠어요? 내가 해 보지요 뭐”

“집사님도 만만치 않으시잖아요, 하하하. 그럼 같이 해 보시자구요”

중년의 목사와 집사의 대화를 뒤편에서 듣던 부인 집사가 힘을 실어주며 지지발언을 해 주었다. 감사하다. 교회 중심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나눔과 헌신으로 삶의 목적을 삼아 살아가는 집사 내외분을 만날 때마다 새 힘을 얻는다. 그리고 큰 어려움 가운데서도 묵묵히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만능 집사 내외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들을 누구와 어떻게 이루게 하시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어 더욱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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