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가 되게 생겼어요.
홀아비가 되게 생겼어요.
  • 남광현
  • 승인 2023.07.2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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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맘때가 되면 교회마다 수련회를 위해 바닷가 교회들을 찾아주는데 올해는 다섯 교회가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여름 수련회를 갖기를 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여서 그런지 교우들 모두가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였기에 안전과 성령의 임재를 위해 함께 기도하기를 요청했다. 사실 동백정교회는 수련회에 대한 의미 있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 2008년 12월 30일, 대전제일감리교회의 100주년 기념교회로 새롭게 건축되고 봉헌된 다음 해에 바로 옆 교회가 장마로 수해를 입어 약속한 수련회 장소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일주일 남짓 남은 가운데 다른 장소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급히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이유는 교우들이 새로 봉헌한 교회이기에 2~3년 만이라도 당분간은 수련회 장소로 제공하지 말자고 결의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난감한 일이었지만 수해를 당한 목사님의 입장과 천안에서 수련회 준비를 마친 청년부원들을 생각하며 교우들을 설득하게 되었다.

“기획위원 여러분들에게 급히 동의를 얻어야 할 일이 있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뭔 일 있으시데유?”

“일전에 우리 교회는 당분간 수련회 장소 제공을 멈추자고 결의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쥬”

“작년에 봉헌하고 우덜이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유?”

“그렇게 기도해서 주신 새 교횐디 우덜이 잘 관리해야지요”

“그런데 옆 00교회가 이번 장마로 수해 입은 것은 모두 들으셔서 알고 계시잖습니까?”

“예, 알고 있지요, 예배당에 물이 차서 마룻바닥을 다 들어내야 한다고 하잖나유”

“그런데, 00교회 목사님께서 천안에 있는 교회의 청년부 수련회 장소를 약속했는데 수해로 인해 불가능하게 되어 우리 교회로 장소 협조를 요청해 오셨네요. 상황을 듣고 보니 어려운 상황인 듯합니다.”

“워쩐대유?”

갑론을박 가운데 결국 장소를 내어 주기로 결의하였고 결과는 걱정과는 달리 기대 이상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 청년들이 2박 3일 동안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고 남겨준 롤링 페이퍼를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좋았다. 교회 문을 닫자고 결의했던 분들마저도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줄 알면서도 우리 생각만 했었노라고 말할 정도로 청년들의 수련회가 뜨거운 기도와 찬양으로 이루어졌다.

13년이 지난 올해도 다섯 교회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표현이 딱 맞을 일이 일어났다. 장마 중 폭우로 교회와 기념관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을 정도까지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수련회 맞이를 준비하다 보니 살피지 못한 곳곳에서 문제들이 노출되었다. 사모가 교우들 모르게 그동안 방치했던 부분들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과로가 쌓이게 되었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아차 싶었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인해 4년 동안 살피지 못했던 곳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 식당으로 사용하던 컨테이너는 곰팡이 천지가 되었고 게스트하우스는 아무리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도 곰팡내가 사라지지 않는 지경이었다. 일일이 곰팡이를 제거하지 않고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혼자서 곰팡이 제거 청소를 해 보겠다고 나섰던 사모가 나가떨어질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필자가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요즘 그나마 이사 청소 업체가 있어서 이런 일들을 맡아 주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비용이 문제다. 그리고 일용직 사무소에 부탁해서 일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도 들었다. 그러나 이것도 시골에서는 여성 일용직을 찾기가 어렵다. 가사도우미라든가 파출부 등등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 봐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칠순을 훌쩍 넘은 여선교회 회장에게 전화를 건넸다.

“목사님, 사모님 혼자 그것을 어떻게 하신데유, 제가 사모님께 전화해서 여선교회에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할게요.”

“권사님, 그래 주시겠어요? 수련회 받자고 하고서 저 홀아비 될뻔했어요. 하다 하다 안 되겠는지 사모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네요 하하하”

“무슨 말씀이세유, 제가 오늘 병원 예약이 있는데 가기전에 사모님께 전화를 드릴게요.”

중복 더위에 속회 예배 마치고 여선교회가 교회로 모였다. 그리고 일흔이 넘고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이 그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무섭게 일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나니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도울 일 없냐고 묻고 땀 범벅이 되도록 힘을 써 주셔서 천막도 설치하고, 갑자기 제초 작업 봉사를 하겠다고 멀리 있는 교회 집사님이 제초기를 들고 와 헌신해 주시고, 예상치 못했던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산처럼 느껴졌던 어촌교회 수련회 준비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마무리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 내일모레면 칠십이 되시는 여선교회 총무 집사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필자에게 건네는 말에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건넬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 죄송해요. 저희가 먼저 살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어요. 내년부터는 여선교회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아직 홀아비 되실 때 아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여 들어주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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