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6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6
  • 안양준
  • 승인 2023.11.15 0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속에서

리처드 도킨스, 니엄 촘스키와 더불어 20세기 3대 지성 중 하나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놀라운 식견을 보여주는 책이다.

1327년 멜크 수도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수도사였던 아드소가 쓴 수기를 바탕으로 당시 가톨릭의 혼란, 수도원 연쇄 살인, 돌치노 파, 마녀사냥에 이르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기초 지식이 부족하면 접근이 어려운 책이다.

13세기 초 교황 클레멘스 5세 당시 아비뇽 유수를 계기로 교황권은 급격히 쇠퇴한다. 무주공산의 로마는 루드비히와 프리드리히 두 황제가 난립하고 72세의 요한 22세가 교황에 선출된다. 루드비히가 승리하자 황제가 하나가 되는 상황을 두려워한 교황이 황제를 파문하고 이에 황제는 교황을 배교자라 비방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 윌리엄 수도사와 서기인 아드소가 문제의 멜크 수도원을 찾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윌리엄은 베이컨을 스승으로 여기며 당시로서는 낯선 기계 과학을 신봉하는 인물이다.

“기계가 발달하면, 기둥이나 버팀대를 세우지 않고도 강과 강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가 있다.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기계를 만드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

수도원 살인 사건은 장서관 원고를 아름답게 장식하던 젊고 유능한 수도사 아델모가 본관 옆 벼랑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얼마 후 교회 담벽 앞 돼지 피를 채운 항아리에 박혀 거꾸로 선 채로 죽어있는 베난티오가 발견되고, 베렝가리오가 벌거벗은 채 욕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심을 살만한 인물을 조사하는 과정에 과거 돌치노 집단에 속한 인물들이 드러난다. 잔인하기로 유명한 이단심문관 베르나르 기가 찾아오자 레미지오는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고문은 안된다고 소리친다.

“나는 돌치노의 면전에서 마르게리타의 육신이 토막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엾은 그 육신에서 내장이 뽑혀 나온 뒤에도 마르게리타는 비명을 지릅디다. 마르게리타의 육신이 재가 되자 형리들은 돌치노에게 달려들어 벌겋게 단 집게로 코와 고환을 떼어 내었습니다. 돌치노가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올시다. 돌치노는 키가 크고 체격이 엄장한 사람입니다. 짙은 수염과 빨간 곱슬머리를 기른 돌치노는 참으로 미남자인 데다 지도력이 출중한 사람으로, 나다닐 때는 늘 깃털을 꽂은 차양 넓은 모자를 쓰고, 긴 칼을 법의의 요하에 차고 다녔습니다. 돌치노가 나타나면 남정네들은 두려움에 몸둘 바를 몰랐고, 여자들은 좋아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무엇합니까? 돌치노는 고문을 당하자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여자처럼, 송아지처럼 비명을 질렀습니다. 악마의 사자가 얼마나 오래 사는지 보자면서, 형리들이 다시 그의 몸에서 살점을 뜯어내자 돌치노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더이다. 그러나 돌치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살점이 얼마 남지도 않은, 피에 젖은 육신을 끌고 화형대에 오른 다음에야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과정 중에 살바토레가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이 발견된다. 살바토레는 레미지오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밤이면 마을 여자를 꾀어 자기만 아는 통로를 통해 수도원 경내로 들어온다고 고백했다. 살바토레와 레미지오는 돌치노가 있던 대머리산에서 만난 사이다. 

여자의 몸을 뒤지라는 베르나르 기의 명이 떨어지자 품 안에서 갓 잡은 수탉 한 마리가 나왔다. 베르나르 기는 윌리엄 수도사에게 싸늘하게 웃으며 말한다.

“윌리엄 형제, 형제도 3년 전에 킬케니에서 이단 심문관을 지냈으니 잘 아실 게요. 여자가 검은 고양이로 둔갑한 악마와 교접한 사건을 말이외다.”
“결론에 이르시는 데 꼭 빈도의 과거 경험 같은 게 필요한 것은 아닐 겝니다만….”
“이 마녀를 독방에 분리 감금하라. 여자는 정체가 분명해진 이상 화형대로 보내는 마녀 재판이 따로 열릴 터이다.”

주인공인 아드소는 우연찮은 기회에 이 여인과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이 여인에 대한 상념이 끊이지 않던 터였지만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돌치노 파에 가담한 이력이 있는 살바토레와 레미지오에 대한 심문은 훨씬 혹독하여 눈뜨고 보기 어려우리만치 흉측했다.

베르나르의 간계는 수도원의 특정인이 이단자 무리와 줄을 대고 있다가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만 증명한다면 적대 세력인 황제측 사절단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황제측 특사인 윌리엄은 베르나르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소설 막바지에 연쇄살인의 범인이 밝혀진다. 그는 맹인 노수사 호르헤였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세상이 소실되었다고 믿거나 아예 씌어지지도 않았다고 믿는 책…”

세상이 소실되었다고 믿거나 아예 존재치 않았다고 믿는 시학 2권은 ‘웃음’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호르헤는 신앙 때문에 웃음을 죄악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말라키아에게 천 마리 전갈의 독이 서책에 묻어 있다고 한 것처럼 책을 읽는 자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후 호르헤는 수도원을 불태우는데 사흘 밤낮을 탔다고 한다. 이렇게 소설은 끝을 맺는다.

분량이 엄청나기에 내용을 전하기에도 부족한 감이 있지만 한 마디로 축약하면 잘못된 기독교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실제 기독교 역사 속에 존재한 사건이라는 것이 마음 아플 뿐이다.

먹을 것을 찾아 수도원에 몰래 들어오고 몸을 팔아서라도 가족의 양식을 구하는 여인의 품에 안긴 고양이를 악마가 둔갑한 것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이단심문관이 어떤 말인들 못하겠는가? 자신이 속한 교황청이 황제측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서는 죄없는 사람을 심문하고 죽이는 일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웃지 않았다고 웃는 사람을 잔인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죽음으로 모는 노수도사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지식을 신앙이라 믿고 모든 것을 거는 어리석음이 자신의 무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수도원을 불태우는 악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가?

무엇보다 돌치노가 이단 임에는 분명해도 당시 교황청의 타락보다 심하겠는가? 그런데 마르게리타와 돌치노를 죽이는 과정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책 속에서 장미는 온갖 지상적 순행의 표징이 된다고 썼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