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2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2
  • 안양준
  • 승인 2023.10.18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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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필립의 「어떤 날」 속에서
경기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무연고자 공영장례식장 ‘그리다’ 빈소. 장례를 치르는 관계자들은 매일 두 번씩 제사상을 새롭게 올리고 제사를 지낸다. 조선일보 2023.02.05 조윤정 기자
경기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무연고자 공영장례식장 ‘그리다’ 빈소. 장례를 치르는 관계자들은 매일 두 번씩 제사상을 새롭게 올리고 제사를 지낸다. 조선일보 2023.02.05 조윤정 기자

<어떤 날>은 「그리고는 아침에 늑대가 염소를 먹었다」는 제목의 책 속에 수록된 글이다. 처음엔 제목에 눈길이 끌려 읽었는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알퐁스 도데의 <스갱 씨의 염소>라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따서 붙인 것으로 프랑스 단편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설들을 묶은 것이다.

<어떤 삶>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보네라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 질문에 “형편이 별스럽지 못할 때는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얘기를 줄곧 들어왔기 때문이오.”라고 답하는 그는 자식을 양육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그들이 커서 자식을 갖게 되면 부모들이 쓴 비용을 갚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여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노동의 길을 택했다.

농촌에서의 노동자 생활은 일 이외의 것은 보지도 못하는 방식이었다. 탈곡기가 선을 보였을 때 그는 익숙해져 기계로 타작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이 낮에 길에서 그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어딘가 일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이도 별로 없다. 다른 이들이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요?”라고 물을 때 사람들은 “몰라요, 일하러 가는 일꾼이에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무명인이었다.

그는 일생 감자를 많이 먹었다. 재 속에서 구워낸 감자는 여러모로 편리했다. 빨리 배가 불러 시장기를 가시게 했고, 가장 값싼 것이기 때문이다. 빵도 굳은 것을 좋아했는데 굳지 않은 빵은 신나게 먹다보면 1파운드나 족히 먹은 것을 알고 깜짝 놀라기 때문이다. 수프도 좋은 것이었다.

이런 삶의 결과는 55세가 되었을 때 나타났다. 번 돈을 몽땅 써버리고 55세가 되어도 25세보다 나아진 것도 없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들은 아프면 자선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재산을 갖지는 않았지만 원하면 겨울내내 연장에 손을 대지 않고 방에 들어앉아 지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일을 했다. 생 제르배 못의 물을 퍼내고 깨끗이 하여 메우는 일을 했는데 상당히 힘들었고 6개월간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가 일한 것은 단지 기분 전환을 위한 것에 불과하였다.

마침내 60세가 되었다. 그는 일생의 염원을 실현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는 100세까지 지낼 만큼 충분한 돈을 갖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아내도 자식도 없기 때문에 그는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가 기다리던 것이 곧 왔다. 허리에, 다리에 그리고 어깨 위쪽에 조금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의사를 찾아갔다. 통증으로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그는 그보다 더 아플 때도 있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의사의 진단을 받고 싶어서였다.

의사는 그에게 조언해 주었다. 

“자, 보네 할아버지, 그 나이에 일을 참 많이 하셨더군요. 저 같으면 푹 쉬겠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할아버지는 일생동안 감자와 수프를 너무 많이 드신 것 같군요. 앞으로는 포도주를 마시고, 계란과 고기를 드세요. 그리고 매일 아침 초콜릿을 큰 잔으로 한 잔 드세요.”

“그것쯤이야!”하고 생각하며 보름 동안 열심히 의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3주 후 의사를 만나 계란이 지나치게 많아야 할 거라고, 고기에 대해서는 요리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한편 그는 부자들이 어떻게 단단한 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 당신은 내가 행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사람이 일생동안 일만 했을 때는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나는 너무 늙었어요. 내 나이에는 뭘 배울 수가 없어요.”

그때 생 제르배에서 카르트물랭까지 이르는 길을 닦고 있었고 그는 그 일을 했는데, 물론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통증 때문에 연장을 쓰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러나 자기 일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도로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죽었다. 그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 전에 죽는 좋은 행운을 가졌던 셈이다.

짧은 글이기에 축약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다.

<어떤 날>의 작가 루이 필립의 작품은 대부분 1900년을 전후로 쓰여졌다. 그는 프랑스 민중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졌는데 마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카뮈나 사르트르보다도 훨씬 오래 전인데….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프랜시스 쉐퍼가 쓴 「거기 계시는 하나님」에 1935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절망선을 말하고 있다. 철학에서 시작하여 예술, 문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상층부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인생의 문제 앞에서 참된 해답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현대인 중 대다수가 <어떤 날>의 주인공과 같은 인생관을 갖고 살아간다. 그로 인해 다음 세대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졌다. 그나마 주인공처럼 돈이라도 모은 경우는 다행이라 하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어라 노동해도 밝은 미래를 소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고령화 되어가는, 그로 인해 병원(요양원)과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붐비는 시점에서 얼마 전부터 떠오르는 새로운 이슈가 무연고, 무빈소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서 나름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고 한 결과 누구 하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그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 전에 죽는 좋은 행운을 가졌던 셈이다.”라고 나름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 당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현대교회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기에도 급급하게 되겠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끝까지 감당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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