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0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0
  • 안양준
  • 승인 2023.10.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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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종과 나비」 속에서

「잠수종과 나비」는 장 도미니크 보비가 쓴 책으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엘르>의 편집장으로 준수한 외모와 화술로 프랑스 사교계를 풍미했던 인물이지만 1995년 갑자기 쓰러졌고 3주 후 의식을 회복했을 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 뿐이었다. 

‘락트 인 증후군’(locked in syndrome)이 그의 병명으로 흔히 ‘뇌일혈’이라 불린다. 

보통 사람의 경우 ‘뇌간’이 신체 일부라는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한다. 뇌의 한가운데 위치하여 뇌와 척수를 이어주는 줄기 역할을 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인 호흡과 혈압을 조절하며, 운동을 조절하며, 반사기능을 담당하는 자율중추로 작용하고, 소뇌와 대뇌, 척수 사이의 신호를 중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뇌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살 가능성이 희박한데 현대의학의 발달로 상황이 복잡해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상태에서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되어 마치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지옥같이 끔찍한 병에 걸릴 확률은 일등 복권에 당첨될 만큼 희박하다. 요행히 신경 계통의 기능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회복 속도가 굉장히 더뎌 발가락을 조금 움직이는데도 4, 5년이 족히 걸린다. 현재로서는 끊임없이 입 속에 과다하게 고이다 못해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이라고 한다. 

1주일에 한 번 하는 목욕은 절망과 환희를 동시에 안겨 주는데 몸이 욕조 속에 잠기는 감미로운 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물장구를 치던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엄습한다. 따끈한 차나 한 잔의 위스키, 혹은 감칠맛나는 책이나 수북한 신문더미를 벗삼아, 발가락으로 수도꼭지를 조절해 가며 욕조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곤 했던 목욕의 즐거움을 상기할 때만큼 현재의 상태가 비참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많지 않지만 다행히 절망감에 오래 빠져들 시간이 없는 것이 이미 덜덜 떨리는 몸이 환자용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까닭이다.

왼쪽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만이 유일한 의사 소통 수단인 상태에서 15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깜박거려 완성한 책이 <잠수종과 나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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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 무질서해 보이는 글자의 행렬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치밀하고 복잡한 계산의 결과이다. 즉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철자를 배치한, 글자의 빌보드 차트라 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알파벳 표를 펼쳐 보이면,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인다. 상대는 그 글자를 받아 적는다. 똑같은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상드린느의 하얀 가운에 달려 있는 명찰에는 언어장애치료사라고 적혀 있지만, 수호천사라고 읽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의사 소통 체계를 마련해 준 사람이 상드린느이니, 그녀가 아니었다면 오래 전에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었을 것이다. 

의사 소통의 단절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중압감으로 느껴진다. 그런 만큼 하루 두 번 상드린느가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모든 불편함을 해소시켜 줄 때 느끼는 위안감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내 몸을 항상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잠수종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느낌이다. 

잠수종은 자신이 입은 환자복을, 나비는 현실을 넘어 가상의 세계로 날아가는 정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물컹물컹하고 흐느적거리는 육체를 수없이 뒤척거려야 비로소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악몽이라고 표현하지만 잠수종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시공간을 넘나들며 날아다닌다.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 누워 잠든 얼굴을 어루만질 수 있고, 공중누각을 지을 수 있고,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를 향한 모험길에 오를 수 있다.

그가 사고로 입원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15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 자신에게 다가온 고통의 시간 속에서 체념하지 않고 덤덤하게 체험한 내용을 글로 전한 것이다.

1997년 3월 첫째 주, <잠수종과 나비>는 프랑스 전 서점에 일제히 깔렸다. 저자는 자기만의 필법으로 쓴 자신의 책을 그의 소중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불과 열흘 만에 17만 부가 판매되는, 프랑스 출판 사상 유래없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전 세계 20개국에서 출간되는 즉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1997년 3월 9일, 장 도미니크 보비는 옥죄던 잠수종을 벗어던지고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자유로운 그만의 세계로,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고….

죽음은 어느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과연 그럴까?

과연 나의 마지막은 나비처럼 아름다운 창공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까?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사랑하는 여인 모니카 포터가 정신이상자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 정신적 충격을 받지만 이후 그녀를 회상하는 순간에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얻게 된다.

무엇보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면은 줄무늬 애벌레가 기어 올라가고 점점 어둡고 캄캄해지기 시작하고 두려워졌지만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는 동안 노랑나비는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은 애벌레 기둥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번데기가 되었다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존재라고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안다면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이 고통이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꽃들에게 희망을’의 마지막을 소개한다. 이는 기독교의 부활 교리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끝 …아니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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