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예배
추모예배
  • 서정남
  • 승인 2023.09.2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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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7:4)"

12년 전이다. 불신자였던 외삼촌께서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장기 입원을 하셨다. 외사촌 남동생이 마지막 같은 아버지 앞에서 결혼을 미룬 자신이 그렇게 죄송하더란다. 의식불명인 환자의 귀에다 "아버지 깨어나시면 나 결혼할게요" 라고 말해 버렸단다.

내가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린다고 문병가는 날에 외삼촌은 극적으로 깨어나셨다. 나는 주님의 은총의 기운이 느껴져서 안수기도로 축복했더니 환자가 회개를 토해내며 눈물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일주일만에 퇴원하신 기적적인 인물이시다. 크리스천이신 주치의는 이후에도 그 기적을 자주 회상하며 나의 안부도 물으신다고 한다.

나는 외사촌 남동생이 자기 부친께 한 약속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믿음의 제자인 규수를 소개해 주었다. 둘은 결혼에 이르렀고 외사촌 남동생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실천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예쁘게 사는 아름다운 가정을 보며 나는 중매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서 선남선녀를 많이도 소개하였지만 지금까지 이 한 건에 머무르고 있다.

3년 전이다.

우리는 장례를 연달아서 치른 사연이 있다. 외삼촌은 나의 친정아버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셨다. 자형인 나의 아버님은 직장을 옮길 때에도 꼭 데리고 다니셨다. 배후에는 어머님의 입김도 작용했으리라. 외삼촌에게 사랑을 많이 베푸신 또 다른 한분이 계신다. 외삼촌의 처남의 부인되시는 여사님께서 평생을 귀하게 여겨 주셨단다. 세 분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나의 아버님은 2020년 9월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우리는 서울서 이틀간 조문객을 받고 3일 째는 고향 선산으로 내려가는 준비로 새벽부터 분주한 와중에 이른 새벽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가 긴장감을 높였다. 비보였다. 고향에 계시는 외삼촌이 어젯밤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병환이셨지만 우리아버님 영정이 선산에 도착하면 그곳서 맞이하겠다고 그 시간만을 기다리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니 바로 다음날 24일에 따라(?)가신 것이다.

우리가족은 아버님을 선영에 모신 다음에 단체로 조문을 할수 있었다. 나는 남아서 그 장례를 기독교 장으로 집행하였다. 그런데 외삼촌이 소천하신 같은 날에 처남댁인 그 여사님마저 또 돌아 가셨다는 것이다. 양일간에 외삼촌과 그를 아낀 분들이 동시에 이 땅을 하직하신 참 이해불가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외사촌 남동생은 마침 한국에서 근무 중이어서 상주 본분을 다 할 수가 있었다.

3년 후, 9월24일,

우리는 추모예배를 위해 Teams를 설치해서 가족들을 화면앞에 모았다. 한국에서는 외사촌 여동생 가족과 외숙모님이 참여하시고 호주에서는 나와 외사촌 남동생 가족이 함께하였다. 3주기인 만큼 고인에 대한 그리움도 뜨거웠다.

예배시간, 울다가 또 서로 보고 웃으며 추억을 나누는 그 은혜의 감흥을 놓치지 않고 나는 외사촌 여동생에게 영접기도를 또 시도해 보았다. 이번에는 그녀는 나의 기도를 또박또박 따라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할렐루야! 천국 가서 아버님을 만나리라는 고백까지 하였다.

오랜 지인이신 권사님이 아직까지 영상예배로 대예배를 대신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침 그분이 식사 초청을 하시어서 심방을 하였다. 정성된 식탁과 기쁜 맘으로 목자를 맞으시는데 몸이 다소 불편하셨다. 예배시간에 남편이신 안수집사님을 특별히 기도하며 축복해 드렸다. 예배의 뜨거움과 기도로 인해 심령이 많이 회복되셨다고 감사를 거듭 보내오신다. 비행기로 시드니에서 브리즈번까지 날아간 보람이 있다.

주님의 시간, 카이로스를 경험하는 여정이었다. 3년 전에 내가 장례식을 인도하니 상주인 외사촌 여동생의 감동이 컸었다. 마치고 예수님을 전하며 영접을 권하였더니 그건 또 별개였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신앙인 올케를 맞이하고 그녀의 향기에 감동하여 심령의 단단한 빗장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나 보다. 외사촌 남동생은 결혼하고는 부인과 같이 신앙생활 잘 하고 있으니 한 가문을 향한 주님의 오랜 계획하심과 이끄심을 느끼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어느 누구든 포기하지 말자. 주님의 시선은 모두에게로 향하고 계시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전도서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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