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아무나 하나
용서는 아무나 하나
  • 이구영
  • 승인 2023.09.0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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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17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눅 5: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가면서 기존세력인 바리새인들이 위기를 느끼기 시작할 즈음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검증하고, 흠집을 내기 위해서 떼거리로 모여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뽑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북쪽지방입니다. 그 북쪽의 각 마을에서 내 노라 하는 학자들이 왔습니다. 또 유대는 이스라엘의 남쪽 지방입니다. 그곳에서도 굉장한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모였습니다. 특히 사람과 군사와 경제와 교육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도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들이 모여와 예수님과 논쟁을 하며 흠을 잡으려는 그 장소에 하필 중풍병자 한 사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움직일 능력도 없어서 친구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오게 되었고, 바로 그 시비의 현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유명한 질문을 하십니다. 바로 그 중풍병자를 앞에 두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떤 말이 더 쉬운 말이냐고?“
이 질문은 이런 뜻입니다. 사람이 죄 용서 받는 것과, 병이 고쳐지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쉽겠느냐는 말입니다. 정답은 병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병은 의사도 고칠 수 있습니다. 병은 자연적으로 치유되기도 합니다. 병은 주술사들도 고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무죄를 선언하고 싶어도 판사가 죄가 있다고 감옥에서 몇 년 있어야 한다고 판결을 하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결정권자는 내가 아니라 판사입니다. 유죄와 무죄를 결정하는 것이 내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그리고 용서해주시는 분도 따로 계십니다. 나와 너 사이의 문제는 서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모든 죄의 근원에는 귀신이 있고,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배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용서는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22절에서 엄청난 선언을 하나 하십니다.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심판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를 정해주시는 분도 그분이시고 용서하시며 무죄 선언해 주시는 분도 예수님 뿐이시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병의 원인이 균에 의한 것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것도 죄의 결과요, 병든 것도 죄의 결과요, 불행도 죄의 결과라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제 죄가 없어졌어, 너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없어졌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용서와 치유의 선언을 해 주십니다.
[눅 5: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성경은 예수님만이 용서의 주체가 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용서는 치료와 연결이 되었고 그는 영과 육이 깨끗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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