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 꽃꽂이 하는 남자집사
제단 꽃꽂이 하는 남자집사
  • 남광현
  • 승인 2023.04.3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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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교회의 주일예배 준비는 교회력에 맞춰 이루어지지만 성도들 개개인의 모습은 어촌의 특성상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필자가 거주하는 서천의 어촌교회에서 이 때쯤이면 봄 어장을 준비하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주일 준비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첫째는 예배순서에 관한 것이요, 둘째는 모임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헌신에 관한 것이다.

봄 어장을 준비하는 가정의 다름은 첫째, 어장일이 시작됨과 동시에 공식적인 예배 참여가 어려워진다. 이에 대해 목사가 신앙훈련을 잘 못 시켜 그렇다고 말한다면 필자는 변명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둘째 다름은 교회 공동체의 공식적인 모임에서도 예외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촌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미 서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어장을 운영하는 중에 모임에 나오면 오히려 바쁜데 뭐 하러 나왔냐는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다름은 몸으로 하는 헌신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어장 운영은 바다에 나가는 당사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매달려야 하기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힘들다. 농촌에서 한창 바쁠 때 자녀들이 월차를 내 농사일을 돕듯이 어촌에서도 휴가를 내어 어장 일을 돕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신의 모습은 분명히 달라진다.

“아니, 집사님 오늘 바다에 나가신다고 하셨잖아요?”

“예, 다녀왔습니다.”

“어장은 어떠신가요?”

“바다는 아직 물이 차서 고기가 없어요, 그래서 먼 바다로 나가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많이 피곤하실 텐데 어떻게 올라 오셨어요?”

“아유, 지난주도 못 나왔는데 이번 주도 예약이 꽉 차서 못나올 것 같아요.”

“그러시군요. 그나저나 건강 잘 살피시면서 운영하셔야지요.”

“예,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제단 꽃이 많이 시들었네요. 저희 자매가 제단 꽃꽂이 한 것이 많이 시들은 것 같다고 올라가 보라고 해서 와 봤어요.”

“집사님, 어려우신데 감사해요. 이번에는 꽃집 장로님께 부탁드릴게요, 염려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목사님, 제가 배 다녀와서 저녁에 해 놓겠습니다. 시키지 마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어장하시는 동안만큼은 편히 하셨으면 좋겠어요.”

“목사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오히려 감사해요. 제 기쁨이고요.”

“예, 집사님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제단 꽃꽂이는 70이 넘은 남자 집사님의 몫이다. 이미 60대 초반부터 자리매김이 되어 있어 교우들 중에 누구도 교회절기 때를 제외하고는 그 자리는 탐하지 못한다. 이 집사님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까지 제단장식은 들쭉날쭉 그 자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장 철이 되면 예외조항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일 예배 준비의 마지막 점검은 토요일 오후 제단장식에 있게 된다. 교회에 연락도 없이 누군가의 헌신이 나타나는 시점이 토요일 오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두 가정에서 말도 없이 헌신을 해 토요일 오후에 서천 읍내의 화원 두 곳에서 꽃배달이 온 경우도 있었다. 교회에 제단 꽃꽂이를 전담할 수 있는 분이 없어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그럼에도 두 주일이상 제단 장식이 없으면 누구라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어 우왕좌왕 들쭉날쭉 현상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준 성도가 바로 남자 집사이다. 어느 토요일 저녁에 예배당 아래층에 있는 주택에서 들으니 누군가 드나듬의 소리가 들려 혹시 화원에서 왔나하고 올라가 보았더니 그 남자 집사님이 꽃을 한가득 가지고 와 예배당 십자가 앞에 펼쳐 놓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어쩐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아무래도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꽃집에 가서 무작정 사왔노라고 답하고 앞으로 꽃꽂이는 직접 해 보겠다고 말했다.

“집사님, 꽃꽂이를 배우셨어요?”

“아니요, 그냥 가끔 저희 집하고 횟집에 해 본 것이 전부인데요, 주일 예배 드리는데 제단이 휑해 보이는 것이 영 좋지 않아서요.”

“집사님도 배 철 되면 많이 바쁘고 힘드실 텐데요?”

“그래도 목사님, 이렇게 해야 한번이라도 더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경험도 없이, 자비량으로,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약속을 목사 앞에서 하려는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촌교회가 가지는 제단 장식의 한계를 스스로 감당해 보겠다는 결단이 얼마나 멋있게 보였는지 모른다. 10년 가까이 지난 이제도 필자가 섬기는 어촌교회의 제단 장식은 여전히 70이 넘은 남자 집사님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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