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8월 31일 토요일, Fusan
제14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8월 31일 토요일, Fusan
  • 리진만
  • 승인 2021.08.3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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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 날에 우리는 순행 마지막 도성에 도착했다. 우리는 남천에서 30리를 지나 다른 북쪽 지방보다 땅이 덜 비옥한 도성에 다다랐다. 서울과 부산 간 대로는(조선시대 신경준의 『도로고』에 보면 당시 경성 부산진 간의 대로는 ‘경성동남지동래로’라 불렸으며 거리는 937리였다. 또한 『대동지지』에서는 ‘동남지동래4대로’라 불렸으며 경성~용인~달천진~문경~대구~동래 구간으로 940리 길로 대로(大路)가 있었다) 없다.

나는 친분이 있는 헌트(헌트( Jonathan.H.Hunt )는 1887년 4월 13일~5월 12일 아펜젤러와 함께 평안도지방(송도, 평양)을 함께 여행한 막역한 지인이었다. 부산해관(현, 세관)이 문을 연 것은 1883년 11월 3일이다. 1905년 을사늑약 때까지 부산세관장은 청나라의 압력으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사람들이 맡았다. 제3대 부산세관장이었던 영국인 헌트는 1888년에 부임해 10년간 근무했다) 부부에게 오늘 오후에 방문하겠다고 기별하고, 그들과 만날 준비를 했다.

부산은 지난여름 내가 이곳을 거쳐 일본으로 갈 때 보다 많이 변해있었다. 일본인들은 해변에 수영이나 서핑을 하던 곳 대신, 상업적인 건물을 세우고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롭고 수익을 위한 새로운 은행 건물을 건축하려 하는데, 여러 조합이 세우고 있는 건축물 뼈대는 이를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돈 벌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건물 중 하나는 어업조합에서 만든 곳이다. 생선을 잡고 말리고 수출하는 양은 대단한 분량이다. 단층 건물에 바닥은 음각된 딱딱한 돌로 깔았는데 4각형 돌의 크기는 2피트쯤 된다.

서쪽 지역에 있는 새로운 학교 건물은 몰려들어 오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이 들어왔다가 바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듯 보인다. 이 지역은 주기적으로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일본인 거주를 위해서 안전한 숲과 높은 구릉을 확보해 두었다. 중국 영사관이 주재하고 있는 이 지역은 풍요하고 커다란 도의 규모에 비해 큰 교역 창구라 할 수 없지만 놀랍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당장 진출해야 한다(아펜젤러 일기 원문에는 이렇게 단어 아래 밑줄을 쳐서 그의 부산 선교부 개설에 대한 의욕을 강조했다). 기다리며 시간을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을 선교본부에 보고할 것이다.

1885년 부산해변 모습, Ⓒ초대해관장 William N. Lovatt 촬영
1890년 부산해관과 헌트 해관장 Ⓒ GCAH Digit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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