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9월 3일 화요일 부산
제15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9월 3일 화요일 부산
  • 리진만
  • 승인 2021.09.0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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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이었으면 우리는 벌써 증기선을 타고 제물포로 출발했을 것이다. 우리는 제시간에 왔지만 험한 날씨 때문에 그 배는 정박하여 있었다. 우리는 언제 배가 뜰까 하며 기다렸다. 나는 어제(9월 2일) 연차총회에 보고할 남부 순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서(안)를 작성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보고서를 마무리할 것이다; 조선에서의 선교사역 확장에 대해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 왔다. 나는 동북지방 다시 말하자면 함경도 지방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방을 정탐했다.

이 보고서를 끝내기 전에 나에게는 몇 가지 확신과 논평이 있는데 이는 틀림없는 것이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서울에 맨 먼저 올라와 사역을 잘 시작했다. 내가 확신하기로는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병원과 학교 사역이며, 또한 선교사들은 최고로 유능한 분들이어야 하고 잘 임명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 서울은 조선 전체를 고려한다. 지방은 수도를 바라보게 되고 모든 문의에 관한 최종 답을 수도에서 듣는다.

2. 평안도에 두 번째로 진출했다. 이는 그럴 이유가 있다. 서울 이외의 도성으로써 서로 비교할 만한 도성은 평양과 대구이다. 대구의 가구 수가 2만이라 하면 인구는 평양보다 더 많을 것이고, 데니(Owen N. Denny, 德尼)(데니(Owen Nickerson Denny·1838~1900)는 오리건주 판사 출신으로 1880년 상하이주재 미총영사를 역임. 1886년에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임명받아 활동하며 청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1890년 외교고문직을 박탈당해 귀국했다. 아펜젤러는 1886년 4월 9일 그의 노트에서 “데니 판사는 공식적으로 국왕 폐하의 외교고문 및 내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라고 썼다.) 판사가 측정한 평양의 75,000명~ 80,000명보다는 약간 큰 도성이다.

모든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평양은 대구보다 우월하다. 평양은 부유할 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커다란 도성에 대구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우리 선교의 2번째 선교부는 평안도 수도인 평양에 있어야 한다.

3. 경상도 사역은 부산에서 해야 한다. 이 확신은 지난달 정탐 여행의 결과이다. 사자의 경계선(the Lion Pass)을 계획하는 것은 어리석다. 경상도는 넓고, 부유하고, 71개의 군(현)(1895년 이전 경상도의 행정구역은 1부, 1대도호부, 3목, 7도호부, 14군, 40현이었다.)으로 구성되어있다. 경상도 수도는 부산에서 3일 거리이고, 나는 부산에서 배로도 갈 수 있다고 들었다. 경상도는 북쪽 지역보다 남부 지역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함경도는 서울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부산에서 담당하는 것이 더 방문이 쉽고, 사역을 잘할 수 있으며, 비용도 적게 들고, 활동이 쉽다. 부산에서 36시간이면 편안한 증기선이 원산에 도착하게 될 것이고, 거기서 함경도 수도까지는 2일 반이면 가능하다. 서울에서 위의 도성으로 가려면 도로에서 여행 중 마주치는 어려움을 제외하고도, 최소한 2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5. 충청도와 전라도의 사역은 이곳 부산에서 쉽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앤드류 감독(당시 일본주재 감리교회 감독. 앤드류 감독(Bishop Andrews)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889년 12월 월례 선교회에서 서울(정동) 구역회(계삭회)를 조직하도록 권고한 장본인이다.)이 이곳에 도착하면 나의 이 우둔한 구상을 전하기 위해 이 계획을 지금 다음과 같이 짜고 있다.

나는 서울에서부터 내륙 정탐여행을 마치고 이곳 부산에 있습니다, 나는 내일 귀경하기 위한 출발을 기대합니다. 순행 결과는 선교정책 구상을 총체적으로 변경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항구 도성에 진출하여 조선의 동부지역을 부산에서 사역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이 조만간 이곳에 오기를 기대하고 저는 이 일을 위해 선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적당한 부지를 오늘 오전 답사했습니다.
일본인 주거지역 안이나 주위에는 적당한 부지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해관과 영국 영사관이 배정을 받았고 중국 영사관 건물이 현재 건축된, 첫 번째 언덕이나 두 번째 언덕 넘어가 적절하리라 봅니다.
우리의 목적에 합당한 곳은 중국인 거주 지역이 시작하는 곳에서 가능하다면 커다란 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돌아오는 지역까지입니다. 그 높은 지역에 있는 아무 공간이든 좋은 선교 용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선교사를 조선인들한테 보내고 싶지만, 외국인 조차지(租借地)에 있는 게 좋다고 봅니다.
나는 당신이 서울에 당도하기 전에 이곳의 부지를 보실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왜냐하면, 서울 연차총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관의 헌트 해관장이 감독님께 이 편지를 전달할 것이고 당신이 필요로 한다면 편의를 제공해 주기로 동의했습니다. 헌트 해관장 부부는 영국 성공회 교인이며 우리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감독님이 곧 우리와 만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을 제물포에서 뵙겠습니다. 맥길 의사 부부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해주시고 스크랜턴 의사를 비롯한 우리가 따스하게 환영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다음 편지는 ‘일본제일은행’에 보내는 것인데 특별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끝.

1886~1890년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활동한 데니 Ⓒ Oregon Historical Society
1886~1890년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활동한 데니 Ⓒ Oregon Histor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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