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9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19
  • 안양준
  • 승인 2023.12.0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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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속에서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원제: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은 1991년 17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2위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동부 체로키 인디언 혈통의 조부모와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회상록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1년 터울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다섯 살이었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가 인디언식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산 속 오두막집, 옥수수 밭 때문에 기르는 개들...

그래도 토요일과 주일 밤 할머니가 석유 등잔을 켜놓고 책을 읽어주셨다. 등잔을 켜는 건 일종의 사치지만 어린 손자를 위해 아끼지 않았다. 개척촌에 갈 때마다 도서관에 들러 할머니가 적어둔 책 목록을 따라 빌리고 일주일에 다섯 단어씩 사전을 보고 외우는 숙제를 주셨다.

할머니가 읽어주는 「멕베스」, 「줄리어스 시저」 등에 대해 할아버지는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한다. 세월이 흐른 후 조지 워싱턴에 대한 역사책을 다시 읽었을 때 할머니가 그가 인디언과 싸운 부분을 읽지 않고 넘어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워싱턴이 위스키 제조업자들에게 주세를 부과하려 한 대목에서 심한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위스키 제조업자였기 때문이다.

개들의 훈련을 위한 ‘여우 사냥’은 일종의 놀이로 할아버지는 필요한 만큼을 빼면 절대 동물을 괴롭히지 않으셨다. 백인 산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야생 칠면조 열두 마리를 보았을 때, 왜 열두 마리 모두 죽이면 안되는지 절대 그 이유를 모를 것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여우를 죽인 적이 없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 비(bonnie bee), ‘예쁜 벌’로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라고 할 때 “I love ye”라는 뜻으로 말한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들은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고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법이라는 말을 자주 하며 정부군이 인디언을 강제 이주시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병사들이 종잇조각에 서명하라고 하였다. 새로운 백인들이 체로키족 토지가 아닌 곳에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서류라고 하여 그들이 서명하자, 더 많은 병사가 무장하고 찾아와 체로키들이 자기 영토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에 서명케 하고 황량한 땅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 1300km 행진으로 4천명 가량의 체로키가 죽었고 이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불렀다. 

작은 나무는 ‘나만의 비밀장소’를 찾아냈다. 할머니는 체로키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비밀장소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으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 쓴다. 이런 것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 부른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이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알만하게 줄어들었다가 결국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만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어떤 사람이 돈 가진 것이 있냐고 묻는다. 50센트가 있다고 하자 이 송아지는 그보다 백배는 더 비싸지만 자신은 기독교도로 송아지를 네가 가져야 할 것 같다고 50센트를 가져갔다. 며칠 후 송아지가 죽었다.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뭘 깨달았냐고 물었다. 기독교도와 거래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자 웃으며 다음부터는 제 입으로 자기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떠벌리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또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기억해주거나 울어주는 사람도 없다고 할 때 그를 그리워하고 슬퍼해주는 게 문상 비둘기라고 한다. 그래서 늦은 밤 문상비둘기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 

할아버지의 인디언식 생각을 배워 나중에 사람들이 너무 단순하다고 하지만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말’에 대해서 ‘단순한’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며 오히려 좋은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목사도 일을 해야 하고, 1달러를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목사라도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위스키 제조업이 아니라도 진심으로 땀 흘리며 일을 한다면 목사들이 과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남에게 무언가를 그냥 주기보다는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훨씬 좋은 일이다. 제 힘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면 필요할 때마다 만들면 되지만, 뭔가를 주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평생 동안 남이 주는 것을 받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자립심을 일깨울 수 있는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

여름이 되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빠와 엄마의 혼인 지팡이를 주셨다. 할아버지가 모자를 집어달라고 하셨고 건네드리자 머리에 쓰시고 손을 잡으니 얼굴에 가만히 웃음이 번졌다.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할아버지의 관을 무덤 속에 내려놓을 때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봄이 오기 전 골짜기로 내려오며 할머니가 베란다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도 저 멀리 산꼭대기 쪽만 올려다보고 계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할머니의 가슴 앞섶에는 나에게 쓴 편지가 꽂혀 있었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두 분이 나를 위해 새겨놓은 자국들을 바라보았다. 그 자국들은 두 분이 느낀 깊은 행복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몸과 삶으로 배운 아름다운 교훈들, 그래서 원제는 ‘작은 나무의 교육’이다. 오늘날 부모 세대가 자녀들에게 영혼을 살찌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또 교회가 어린 영혼들에게 긍정적인 모습을 심어주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도 욕심없는 삶을 살았던 인디언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남의 땅을 빼앗고 추방하고 열악한 환경으로 몰아넣는 백인의 DNA를 타고 난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순수를 생각하며 윤회가 아닌 제대로 된 기독교적 죽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칠 수 있었다면? 그들의 평범한 상식보다 낮아보이는 기독교에서 무엇을 배우려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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