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런 시장 인터뷰
캐런 시장 인터뷰
  • 서정남
  • 승인 2023.05.0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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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기사에서 Harmony Day 관련 캐런 펜사베네 (Karen Pensabene) 스트라스필드 시장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민자가 더구나 이방인 여성이 호주에서 시장(Mayor)이 되기까지 그녀의 인생스토리가 궁금하다고 하니 시장과 친분이 있는 내 대학 후배가 인터뷰 요청 이메일을 바로 넣어준다. 참 격이 없는 사회이다. 우리 같으면 시장이나 구청장 정도이면 빡빡한 일정으로 일반인 접견은 상상이 안 되는데, 그것이 되는 나라가 호주이다.

이 시장과의 인터뷰는 몇 주 후 위 인터뷰 요청을 해준 대학 후배의 영어교실 개원식을 통해 성사되었다. 같은 노동당(Australian Labor Party)에 소속되어있는 후배에게 축하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개원식에 참석한 것이다. 쉽지 않은 인터뷰 요청에 기꺼이 응해준 캐런 시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핸드폰에 그녀의 목소리를 녹음하며 그녀의 인생 연대기를 시작한다.

"우리 어머님은 1920년대 생후 6개월 유아로 부모님 따라서 호주로 이민을 온 이민 1세대이셨고 저는 호주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입니다. 저의 성장기에 레바논 출신이신 부모님은 아랍어 사용을 강요하셨지만 어렸던 저는 그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영어에만 주력하였지요. 결국 저의 의지결여로 인해 아랍어를 놓친 시간이 참 아쉽습니다. 부디 이민 2세대들은 모국어도 병행하기를 권장합니다.

저의 성장기인 1960년대 중반은 사회적으로도 인종차별이 심했지요.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생김의 다름으로 인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아니면 '워그(wog)' 라는 조롱어를 일삼으며 놀리기가 일수였지요.(Wog는 남유럽이나 중동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모욕적인 말이다). 그 후 호주에서 1975년 경 인종차별 금지법이 생겨서 이민자들의 입지가 좀 나아진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결혼 후 가장 먼저 가진 직업은 의료기기 영업원이었습니다. 그 후 자녀들이 성장하고 조기은퇴하고 나니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시작 되었습니다. 지역사회의 자원 봉사자로 발을 내딛었고 이것이 정치계 입문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지요. 지인의 권유로 노동당에 가입하며 사회복지를 병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정치활동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다른 일과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러한 정치커리어는 8년 전 저를 스트라스필드 시청으로 이끌었고 묵묵히 헌신하다 보니 오늘 이 자리, 시장의 기회가 저에게도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회구성원인 남녀 50:50의 비율로 보면 아직도 사회는 많은 여성 참여를 요청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한국의 한 시청 직원들이 시드니를 방문하였는데 직원 가운데 여성은 단 한 명뿐이었지요. 한국여성의 사회참여도가 아직은 저조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기회는 여성 스스로가 잡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은퇴하고 안일한 세월을 보냈다면 이 자리가 주어졌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제 자신이 겪은 아픔과 경험을 가지고 비주류인 이민자들 복지에 힘쓰고 섬기려 합니다."

시장은 나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달랐지만 이 짧은 인터뷰에서 많은 깨달음과 울림을 안겨주고 간다. 그녀는 늦은 나이라는 일반적인 시간의 잣대를 초월하였다. 비주류도 주류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케이스이다. 필자인 나도 60세에 교회 개척을 하고 63세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니까 이모저모로 사용을 해 주신다. 인생도 개척이다. 은퇴 후의 청사진도 미리 준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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