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회의는 참석하고 싶지 않네요
그런 회의는 참석하고 싶지 않네요
  • 남광현
  • 승인 2022.08.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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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촌마을이 뒤숭숭해진 일 가운데 인근 발전소 철거가 큰 몫을 한 모양새다. 30년 넘게 운용되던 화력발전소가 새롭게 건설되면서 기존에 사용되던 모든 시설을 철거해야 할 상황이다 보니 발전소 관계자와 철거업체 그리고 지역주민들 사이에 여러 어려움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교회는 철거 현장에서 몇몇 주택들과 함께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어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도 근 1년 반을 조용히 추이를 살피는 정도로 지내왔는데 얼마 전, 3번째 철거 현장 폭발작업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이전까지 발전소 시설 폭파 작업이 진행되면 며칠 전부터 이장님의 방송을 통해 시간과 주의가 고지되고 업체에서는 차량을 통해 마을을 돌며 스피커로 안내방송을 해 주었기에 주택이나 사무실에서 안전하게 대기하며 지났었다. 물론 폭파 작업 여파로 교회 화장실 타일이 떨어지기도 하고 내부에서 진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철거 이후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노래하듯 추억하는 마량리 동백정 해수욕장이 복원된다는 것을 기대하며 작업이 빨리 마무리되기만을 바랐었다.

그런데 3차 폭파 작업은 양상이 달랐다. 업체 측에서 안내한 바로는 3차 폭파 작업은 건물 내부에서 진행되는 관계로 장착되는 폭약의 양도 적을뿐더러 이전보다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일 상황은 전혀 달랐다. 마을 분들뿐만 아니라 신 발전소 직원들조차도 놀라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 필자도 발전소에서 나온 직원들 그리고 마을 관계자들과 현장을 지켜보다가 소리와 진동에 너무 놀라 가슴의 두근거림을 경험했는데 이것은 며칠 동안 진정되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며칠 후, 바로 앞집(철거 현장에서 교회보다 가까운 집) 어르신이 전화를 주었다.

“목사님, 저 000 할아버지예요”

“예, 어르신”

“목사님, 교회는 괜찮은가요?”

“뭐, 일일이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많이 놀랐고 진동이 심했습니다.”

“목사님,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발전소 직원들과 철거업체 직원들 불러서 따졌습니다. 목사님도 그렇게 하세요”

“예, 어르신 저도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회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발전소에서 저보고만 너무한다고 해요, 왜 바로 옆에 있는 교회는 아무런 말이 없는데 당신만 그렇게 떠드냐는 식이예요.”

“어르신, 이번을 계기로 교회도 공식적으로 어려움을 전하도록 할 계획이니 그렇게 아시지요.”

교회 기획위원회로 모여 현재까지의 교회 상황을 나누고 향후 발전소 철거작업 관련 대책위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했고 회원 모두가 동의해 주었다. 그런데 며칠 뒤 기획위원이신 집사님이(필자의 교회는 고령화로 인해 권사님들이 이미 임원의 자격이 상실되어 집사 중에 2분이 위원이다.) 전화를 주셨는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을 정도로 떨렸다.

“목사님, 저 000 집사예요. 식사는 하셨어요?”

“예, 집사님. 집사님께서 만들어 주신 물김치 덕분에 매끼 맛나게 잘 먹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유 멀요, 맛이나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집사님 정말 맛있어요. 어제도 사모에게 장모님 생전에 만들어 주셨던 물김치 생각이 많이 날 정도로 맛있다고 일렀는데요.”

“목사님, 금요일에 기획위원회로 모이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참석하지 않으렵니다.”

“예, 집사님 그날 무슨 일정이 있으세요?”

“그건 아닌데요, 목사님께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한데 한 말씀 드려야겠네요. 목사님도 알다시피 철거작업이 빨리 되어야 해수욕장도 복원되고 그래야 우리 마을이 좋아지게 되잖아요, 그런데 마을에 몇몇이 쫓아다니며 철거작업 때문에 분진피해가 크네, 적네, 소음 때문에 사네, 못사네, 떠들어 대니 내 참, 목사님 제가 발전소를 대변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 마을이 더 좋아지고 교회가 부흥하려면 철거공사가 빨리 끝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사님도 제 말뜻을 이해하시지요?”

“그럼요, 집사님께서 어떤 뜻으로 말씀하시는지 분명히 알지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같은 생각들이시고, 저도 그런 의미에서 교회 내에서 대책위를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고요”

“우리 목사님이야 제가 믿지요, 그런데 000 집사나 000 권사는 달라요, 그래서 회의하면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제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생각 들었어요, 목사님 이해해 주세요”

참 조용하신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꽤 염려가 크신 듯하다. 그리고 목사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고 붙인 단서는 적어도 교회 외적인 일에 있어서 목사가 몇몇 교우들에게 휘둘리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교우분들 한 분, 한 분의 사랑이 눈물겨울 정도로 감사하다. 이것이 시골 어촌 목사가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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