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의 아들 집사
권사의 아들 집사
  • 남광현
  • 승인 2022.07.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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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이라는 상황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아픔을 볼 수 있다. 표현하기 힘든 예이지만 부지중 어장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자녀들의 아픔, 부모의 배 사업 실패로(필자의 경험으로 어촌에서는 흔한 경우이다.) 인한 부도를 경험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녀들의 아픔,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집도 절도 없이 손가락질받던 부모를 두고 가슴 조아리던 자녀들의 아픔, 조그만 포구와 마을 공터에서 어른들의 치열한 자리다툼을 보면서 욕설과 싸움을 먼저 배운 자녀들의 아픔, 부모의 배 사업으로 어릴 적부터 홀로 지내는 가운데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에서 기인한 정신장애를 가진 자녀들의 아픔 등, 조금만 눈여겨보면 어촌 지기들의 삶 속에 배어 있는 아픔들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촌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들도 이런 아픔들을 같이 가지고 살아간다. 여느 어촌가정하고 크게 다른 삶이 아니란 말이다. 이러하기에 어촌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표현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크든 작든 말 못 할 어려움을 품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함께 돕고 위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교우들과 나누며 20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런 탓에 교우들의 기도요청 방법도 다양하다. 최근 60대 초반 집사님이 당뇨 합병증으로 홀로 생활이 어려워 90이 다 되신 어머님 권사님이 계신 일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창립한 장로님의 조카이기도 한 집사님은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에 출석하지 못한지가 10년 가까이 되는 분이다. 때론 목사가 싫어서, 때론 교우들과의 관계로, 그리고 집안 식구들과의 소소한 문제로 교회 출입을 멈춘 분이다. 마음이 아파 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던 분이었는데 인척들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목사님, 00이 집사 소식 들으셨어유?”
“아니요, 권사님. 집사님 출근 잘하시지 않나요?”
“글쎄, 그렇게 교회 나오라고 말해도 들어먹지 않더니 결국 일산으로 갔데유”
“일산요?, 권사님 댁으로 가시 거예요?”
“지난주 갔데유, 발견 못 했으면 죽을 뻔했어유”
“무슨 말씀이세요?”
“당뇨병 환자가 술 처먹고 며칠을 못 일어났다나 봐유 발견해서 겨우 살렸다나 뭐라나, 조카지만 모르것네유”
“참, 어떻게 해야 좋을지 권사님 저희도 어렵네요”
“그럼유, 목사님 사모님 그만큼 하신 공도 몰라유, 신경 쓰지 마세유”

언뜻 들으면 집사님의 행실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며 목사는 신경 쓰지 마시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경험상, 충청도 끝자락인 서천에서의 이 말은 그 집사님을 위해 목사가 더 마음을 써 주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달라는 요청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교우들의 이런 아픔 서린 기도요청이 목회에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목사에게 자신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들은 목회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사실 이 집사님은 필자가 포기할 수 없는 분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부임 초기 한밤중에 어머니 권사님께 아들이 손목이 잘린 것 같다고 도와달라고 급한 전화를 해서 내려 가 봤더니 술 취해 거실 유리창을 손으로 깨면서 동맥이 끊어진 상태였다. 근처 응급실까지 운전을 어떻게 해서 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결혼 후 부인 집사님이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헤어지는 일도 있었고 다시 마음을 다듬고 교회에 나와 최선을 다하는 헌신을 보이기도 하면서 이후로 오직 믿음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지만, 또 교회를 떠났다. 지금은 자원은퇴를 하셨지만, 그 집사님의 일가인 작은아버지 목사님께서 그 집사님으로 인해 고민하는 필자를 자주 위로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이런 게 목회여, 은퇴하니까 그렇게 속 썩이던 사람들이 더 생각나”
“참고, 기도해줘요. 내가 알어, 00이 집사가 형님 때문에 아픔이 많아 그래서 그래”
“권사 아들이라고 해야 뭐 배운 게 있어, 아는 게 있어, 믿음이 있어야 신앙생활을 하지”

교우들이 한목소리로 “권사의 아들 집사”라고 부르면서 교회에서 집사는 적어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들 기준 잡아 했던 말들이 정작 그 집사가 교회로 발걸음하기 어렵게 만든 이유가 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 건강을 잃고 90이 다 되신 어머니 권사님께 의지하려 하는 집사님을 생각하는 목사의 마음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아픔으로 깊은 자국이 파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가정이든 아픈 손가락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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