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보듬는 방법
아픔을 보듬는 방법
  • 남광현
  • 승인 2022.08.31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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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왜 내 이야기 목사님께 했어요?”

“아 00엄마, 무슨 말씀이세요?”

“왜 내가 사모님께 비밀이라고 말한 것을 목사님이 알고 있어요?”

“…….”

“사모님이 그러셨잖아요, 내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 했는데…….”

“00엄마, 그것은 지난번 00네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 나눈 말인데 오해가 있네요.”

“아 그래요, 죄송해요. 제가 잘 몰랐네요. 그럼 사모님 선교비 좀 보내려고 하니 교회 통장번호 좀 알려주세요.”

“성도님, 그것은 주일에 교회 나오셔서 헌금을 드리시면 좋겠어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00아빠가 교회 가기 싫어해요, 목사님한테 바쁘다고 거짓말하는 거예요”

교우 중 한분이 우울증 재발 후 사모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위의 대화는 사모가 급히 전화기를 들고 들어와 스피커폰으로 들려준 대화 내용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는 공식병명이 조현병인 일명 우울증을 경험했거나 하고 있는 교우들이 몇 분 있다. 젊을 때 우울증의 큰 어려움을 신앙으로 잘 견디신 분도 있고 현재는 이혼을 하고 교회를 떠난 집사님도 있으며 이사를 해서 떠난 교우도 있다. 그리고 전화로 사모와 대화를 나누었던 산후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젊은 성도님도 그 분들 중에 한분이다.

이 가정은 5년 전,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인 친우의 요청으로 당시 산후 우울증세를 이해하지 못해 가족 갈등이 극에 달해있는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고 상황이 너무 위험해 산모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하고 생후 5개월 된 핏덩이를 목사 가정에서 돌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루게 된 가정이다. 이후 산모의 증세가 호전되어 최근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 올 수 있었고 핏덩이였던 아이는 5살 박이 유치원생이 되었다.

코로나19로 교회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3년 가까이 예배 참석이 어려워지면서 신앙생활이 힘들게 되었으며 필자 내외는 2주에 1번꼴로 저녁식사자리를 만들면서 신앙적 권면을 지속해왔었다. 필자도 필자지만 사업을 하는 남자성도님 입장에서 격주로 시간을 낸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입장을 알면서도 식사대접을 받았으니 목사 내외가 식사대접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가지고 관계를 유지했었다. 때론 약속을 하고 약속시간 바로 전에 취소를 하는 바람에 1시간을 달려갔다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 와중에 너무 예쁘게 자라는 아이가 눈에 밟혀 필자 내외는 그 가정의 구원과 평강을 위해 기도를 쉴 수 없었다. 얼마 전에도 필자의 처가 그 가정과 저녁식사 약속을 잡는데 일정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안쓰럽기까지 했었다. 결국 두 달 가까이 만나지 못했는데 어느 날 필자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남목사 잘 지내지?”

“그럼, 영전을 했는데 축하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그려 한번 만나야지”

“지난번 축하 전화 줬었잖아, 내가 한번 교회로 찾아 간다 간다하면서 좀 바쁘네.”

“다른 게 아니라 00네 소식 들었어?”

“아니, 그렇지 않아도 친구한테 전화한번 해 보려고 했었네, 아침 일찍 00엄마에게 전화 왔는데 또 그 증세가 발현된 것 같은데 아닌가? 최근 우리가 부담스러운지 피하는 느낌이 들었었고 우리 내외의 권면을 듣는 것이 많이 불편해 했었거든”

“나도 그 일로 남목사와 상의해야 될 것 같아 전화했네, 남목사 내외가 불편해서가 아닐 거야, 후배 얘기 들어보면 너무 좋대, 그리고 이제는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하던데”

“그래, 그렇구나.”

“나도 한동안 연락 못했었는데 후배에게 일찍 전화 왔어, 00엄마가 또 그 증상이 나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그럼 교회로 전화를 하지 참내”

“그렇지 않아도 후배가 남목사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 큰 수술하고 힘든 분께 차마 전화 못했다고 그러내”

여자 성도의 병세 상황이 너무 좋아져 약을 끊어도 될 것 같아 복용치 않아 재발된 상황이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필자는 남자 성도와 상의하며 경찰과 119를 동원해 대학병원으로 후송처리하고 5살 박이 00를 목사 가정으로 데려왔다. 핏덩이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 어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던 필자 내외를 따라 나서면서 그 아이가 건넨 말이다.

“엄만 아파서 119타고 병원 가서 나는 교회에 가 있어야 한다고 아빠가 말했어.

“아빠가 그랬어? 그럼 사모님하고 같이 잘 수 있어?”

“엉, 그리고 엄마가 병원에서 오면 아빠가 엄마랑 교회 와서 나 데리고 간대”

“그랬구나, 우리00 참 대단하다”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목사를 생각하며 배려하려는 성도와 그 아픔을 보듬으려는 목사 내외의 마음이 긴 말 필요 없이 5살 박이 어린아이의 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교회 공동체에 베푸신 하나님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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