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와 하나 됨이 어려운 영성
일치와 하나 됨이 어려운 영성
  • 남광현
  • 승인 2022.06.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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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있을 때마다 어촌의 작은 교회는 서울의 종로 한복판이 된다. 정치 1번지라고 하면 종로이듯이 어떤 선거이든 한 목소리가 없고 한 방향 몰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을 이장선거에도 좌, 우 소신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몇 안 되는 교우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치열한(?) 선거운동을 일삼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연세들에 비해 여전히 교회를 넘어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는 열정이 식지 않았다는 점이고, 부정적인 면은 이런 모습을 교회 밖에서 바라볼 때 일치와 하나 됨의 특징을 나타내지 못하는 공동체로 평가되기도 한다. 필자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 치열함만큼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교우들 중에 아직 이장선거에 출마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교우들의 성향이 이렇다 보니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마음 졸이고 성향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을과 함께 이웃하고 있는 화력발전소가 철거작업에 들어간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물론 더 큰 화력발전소가 세워진 후에 일이다. 무연탄을 주로 사용하던 화력 발전소 철거 작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울 뿐 아니라 환경에 유해한 작업인지를 어촌 마을주민 모두가 직접 경험하고 있다. 교우들과 철거 과정의 심각성과 교회 대책에 관해 견해를 나누다 보면 여전히 일치의 어려움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어려움임을 잘 알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교우들의 견해가 일치되고 마을 주민들과 한목소리로 문제제기를 하리라 기대하지만 역시나 이런 저런 사유로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을 보게 된다. 한 예로, 철거 작업 중에 일어나는 분진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마을로 넘어오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이장님 중심으로 분진 방어벽을 설치해 줄 것을 발전소에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그 과정에 있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확인서를 받게 되었다. 교회도 당연히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웬일인지 교회에게는 확인서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장로님 저예요”
“예, 목사님이셔유, 웬일이셔유”
“장로님, 혹시 지난번 이장님이 방송으로 확인서 제출하라고 한 것 제출하셨나요?”
“그럼유 마을 주민들 거의 다 확인서 제출했을 텐데유”
“목사님, 교회도 제출 하셨나유?”
“그 일로 전화 드렸어요, 교회는 아직 제출하지 않았거든요. 그럼 이미 마감진 건가요?”
“목사님, 제가 지금 이장한테 가서 물어보고 용지가지고 교회로 올라갈께유, 기다리셔유”
“예, 그럴게요.

장로님께서 확인서를 가지고 부랴부랴 교회로 올라오셨고 작성해 놓으면 이장님께 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혹시나 싶어 홀로 계시는 교우들과 집을 자주 비우시는 가정에 전화를 해 보았는데 몇 몇 분들은 대리로 제출했다고도 하고 몇 몇은 그걸 왜 하냐고 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니 결국 문제를 일으킨 철거 업체를 도와주는 겪이 된다는 논리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피해를 입은 것은 분명한데 그 책임을 업체가 나서서 직접 확인해야지 왜 마을주민들이 확인해서 알려 줘야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어 교회는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고 주일을 맞아 임원들과 회의 통해 결정을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마을 주민들 중 제출하지 않은 분들이 교회도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을 잘한 결정으로 인정해 주고 교우들에게 역시 교회가 잘 한다는 인사를 건넸다는 것이다. 예배 후에 권사님들이 말씀을 건넸다.

“목사님, 이번에는 잘 하셨어요.
“제가 결정했나요, 임원회에서 결정해 주신 거죠”
“누구누구는 목사님이 제출하지 않아서 교회가 해택을 못 보면 어떻게 하냐고 했는데유 발전소에서 마을은 다 피해 보상 해 준데유”
“그래요, 잘 되었네요, 그게 맞지요”
“그러고저러고 이번일로 ‘앞으로 교회 나가야 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유”

밖에서 볼 때 오합지졸인양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교회로 여겨지는 어촌의 작은 공동체가 영혼구원을 위한 열정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다양한 영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목회에 있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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