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 남광현
  • 승인 2022.05.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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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목사님 뭐 사러 오셨어요?”

“지난겨울 게스트하우스 변기가 동파돼서 수리 맡겼는데...”

“수도라인도 터졌다고 해서 노출로 시공하려 하는데 재료 준비하면 도와준다고 해서요”

“얼마나 달라고 하는데요?”

“얼마 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목사님, 돈 보냈어요?”

“아니요 아직 안 보냈습니다.”

“그럼 오지 말라고 하세요, 내가 다 할 줄 아는데 뭐하러 비싼 돈 들여요….”

동네 철물점에 수도공사를 위해 재료 사러 갔다가 집사님 한 분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이다. 집사님의 큰 소리에 난감한 상황임을 인지한 철물점 아저씨도 돈을 받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필자는 부담스러운 공사금액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던 차였기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70세가 넘으신 분이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20년 어촌목회를 통해 분명히 알고 있는 교우들의 성향은 “한다면 하신다”라는 것이다. 업체와의 구두 계약을 정중히 취소했다.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70세 이쪽저쪽 되시는 분들이시고 필자도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므로 교회 수리 문제가 생기면 이런저런 고민이 항상 앞서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교회 건물 외벽 방수 공사를 해야 하는데 예산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고 이때, 남선교회에서 책임지고 직접 시공해 보겠다고 해서 진행한 일이 있었다. 그때 주축이 되었던 분이 바로 철물점에서 만난 집사님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할 정도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었다. 경사가 급한 교회 지붕에 올라가 시공을 하던 그 집사님이 방수액이 지붕에 날려 도포되는 바람에 미끄러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사다리차 장비가 동원되었고 구출하다시피 해서 내려올 수 있었다. 이런 선 경험이 있음에도 집사님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모습이 필자이다. 목회자들이 말 못 하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교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섬기는 시골 어촌교회만 해도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어 이렇듯 아슬아슬한 일들이 목사에게 가슴 졸이게 한다.

교우들의 입장도 분명히 있다. 장애가 있는 목사가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모른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교회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순식간에 모두의 주제 거리가 되고 성격 급한 누군가는 벌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가정으로 전화를 넣게 된다. 일 처리가 잘 되면 그렇게 열심히 연락하신 분과 앞서 일하신 분에게 수고했다는 인사가 전해지지만 문제해결이 되지 못할 때는 감당키 어려운 비난이 암묵적으로 전달된다. 일을 왜 그 성도에게 맡겼냐는 것이다. 그런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어야 한다는 의미다. 작년 초여름의 일이었다. 주일 새벽예배까지 잘 작동되던 에어컨이 낮 예배를 준비하는데 점검 신호가 깜빡거렸다. 당장 기술자를 부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필자가 섬기는 예배당 에어컨은 천정형 공조 시스템이다) 아직 예배당이 덥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서 예배 후 조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되어 교우분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오고 한분 두분 조심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찬바람이 나오지 않지?”

“그런디 왠일이랴 에~컨 안켰나벼”

“목사님께 말혀봐”

“걸어 올라와서 그런가 나는 덥네”

그런데도 목사에게 와서 에어컨 켜 달라고 말씀들을 하지 못한다. 그저 어떤 상황인지 서로 눈치만 보는 것이다. 대신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은 교우들에게 전화하는 모습들이 재미있다. 나름대로 누군가에게 연락하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가 가장 더운 한여름 4주 동안 에어컨 가동 없이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었다. 한여름 어촌에서 무려 5주 동안 냉방 없이 예배를 드리면서 교우분들이 목사에게 건네주었던 가장 많은 이야기는 다름 아닌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 주에는 아무개가 고칠 겁니다.” 필자는 한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일을 떠 올릴 때마다 무모하리만큼 큰 교우분들의 사랑이 참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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