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서른번째 이야기
큰나무 서른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1.05.2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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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내린 봄비 탓에 교회 주변에 풀이 무성하다. 결단에 준하는 마음가짐으로 풀을 뽑기를 시작한지 채 십 분을 넘기기 전에 더위와 질긴 풀로 인해 지쳐 버렸고 다른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초기가 생각났다. 지난해 창고에 넣어 두었던 예초기를 점검하여 시동 손잡이를 당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동 걸기에 성공했다. 가속 레버를 돌려 속도를 놓였는데 그만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다시 시동을 걸고 가속을 시도했지만 가속만 시도하면 시동이 꺼져 버리는 통에 진땀만 흘리고 포기하고 말았다. 다음 대안으로 제초제를 사용하는 방법인데 교회 마당에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어서 꺼려졌지만 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무기를 찾아 약을 타고 등에 짊어지고 핸들을 위아래로 힘 있게 움직였다. 노즐 손잡이 부근에서 약물이 새기 시작한다. 지난겨울 차있던 약물이 얼어 손잡이 부근이 부풀어 올라 터진 것이다.

지치고 독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과수원에서 쓰던 동력 분무기를 쓰기로 하여 전원 스위치를 넣는 순간 상단부에서 약물이 분수를 이룬다. 지난해 약물이 한 두 방울 새 나오는 것을 잡기 위해 나사를 과도하게 돌려 나사가 부러진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무거운 분무기를 차에 실고 서비스를 해주는 가게로 향하면서 점검 없이 살아온 시간들을 반성하게 된다.

봄맞이를 하면서 기계나 농기구들을 점검하여 손을 봐나야 했는데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 일이 닥쳐서야 사용하려한 것이 종일 땀만 흘리고 일은 하나도 진척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삶에도 주기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은 성인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고 이십대를 지나면서는 독립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십이 넘으면 노년을 향해 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고 육십을 넘기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오늘이 의미 있는 것은 지나온 시간의 결과로 인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인간은 오랜 삶의 시행착오를 거쳐 후생들에게 이 중요한 가르침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이 가르침에 성실이라는 답으로 응답하는 후생들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성실은 인간이 지키기에 가장 힘들어 하는 정서이다. 온전하지 않은 인간은 온전히 성실하지 못하다. 삶이 기웃 둥 거리고 때때로 당황하는 모습은 낯 선자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인간이 아니라 성실을 포기하지 않고 온전을 향해 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허물어진 삶이라도 추스르고 정돈하여 다시 시작하는 모습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의 일부 이기도하다. 우리는 이런 모습에 박수로 응원하고 격려해야한다.

십여 년을 넘게 해온 여름의 반려자인 예초기와 이별하고 새로운 예초기를 장만했다. 부드러운 시동과 저소음의 엔진 소리가 썩 맘에 든다. 마당은 금 새 말끔해 졌고 왠지 모를 성취감 비슷한 것이 마음에 으쓱한 기분이 들게 한다.

여름은 분명 가까이 있다. 여름은 오늘처럼 당황스럽지 않게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뒤뜰 배수구에 쌓여 있는 낙엽부터 글어내고 큰비내리는 날을 대비하여 주변을 새로운 마음으로 살필 예정이다.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내 목회 시간만큼 오래 사용해온 선풍기도 분리하여 청소를 해두어야겠다.

허둥대며 지낸 며칠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밤의 정취가 평안하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스며드는 잠을 청하며 산이실에서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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